역사는 반복되는가? 민주노총이 8일 중앙위에서 발전노조 파업에 대한 노정합의의 책임을 물어, 단병호 위원장을 제외한 임원진 총사퇴 및 비대위 구성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날 중앙위의 모습이나, 24일로 비대위 구성을 미뤄놓은 이같은 결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바로 4년전 98년 정리해고에 대한 노사정 타협 이후 민주노총이 걸어왔던 길과 너무도 흡사한 꼴을 보이면서, 자칫 '98년도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98년 정리해고 합의에 대한 분노, 그리고 수습

98년 2월 국가부도 사태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 민주노총도 시대적 상황에 떠밀려 정리해고 법제화라는 '노사정 합의'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조합원들은 "노동자들을 팔아먹었다"며 지도부에 대해 분노했고,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안을 67.6%로 부결시켰다. 결국 배석범 직무대행 등 지도부는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으며, 민주노총은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같은 상황은 4년후 지난 2일 발전노조 파업에 대한 노정합의 이후 벌어진 민주노총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 역시 투본회의에서 노정합의서 폐기를 결정했고, 8일 중앙위에서 임원진이 총사퇴했다. 그리고 98년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향후 위기 수습방안 역시 98년 상황이 재판되는 것 같아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98년에도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면서 지도력 및 조직력을 회복해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나서자는 요구가 높았지만, 결국 사태수습 과정에서 조직내부 갈등이 표출되면서 연기된 2기 임원선거를 치르기까지 혼란은 계속됐다.

■ 98년 비대위 구성 불구 총파업 철회, 그리고 2002년은?

98년 민주노총은 정리해고법 무효화를 선언하며 지도부 사퇴 이후 단병호 당시 민주금속연맹 위원장을 만장일치로 비대위 위원장으로 추대, 총파업 지도부로 세웠다. 이에 2기 임원선거에 앞서 비대위는 위기관리를 넘어 총파업을 조직해야 했고, 비대위 위원장이 합의추대까지 되면서 통합력이 발휘되는 듯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한편 조직력 및 지도력을 회복하는데 실패하면서 투쟁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실제 이 당시 내부는 강경-온건 노선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었고, 사태 수습을 위해 힘을 모으기보다는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합의추대에도 불구하고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높았다. 때문에 결국 민주노총은 고심 끝에 총파업 철회를 선언하고 말았다. 사태수습책으로 논의됐던 조직력 및 지도력의 회복, 그리고 통합력이 끝내 발휘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는 민주노총은 98년 임단투 방침을 확정하지도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곧이어 2기 임원선거에 돌입했다. 2기 임원선거에서는 초기 4팀에서 결국 2파전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이 과정에서 치열한 강경-온건 조직전이 벌어졌다.

4년후의 민주노총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8일 중앙위에서 보여준 사태수습책 역시 애초 조합원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평이다. 결국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했으나, 비대위 위원장을 맡을 인물이 뚜렷이 떠오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역시 조직간 갈등을 보이는 상황에서 통합력을 발휘할 비대위가 구성될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4월이 다 가도록 임단협 투쟁도 공백을 맞게 된다는 공식이 가능해질 수 있고, 결국 민주노총이 지난 투본에서 결정한 정부가 민영화 추진 시 즉각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지도 현재로선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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