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산업노조 파업사태는 관전포인트를 방용석(方鏞錫) 노동부 장관이라는 인물에 맞춰 복기해보면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묘미가 있다.

방장관은 노동문제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 다. 1970년대 원풍모방 파업사태를 주도했고 이후 노동운동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반면 발전산업노조는 지난해 하반기 발전5사가 한국전력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생긴, 투쟁경력이 일천한 ‘햇병아리’ 조직이다.

발전노조 파업사태는 외견상 ‘햇병아리 노조’ 를 노동운동가 집단인 민주노총이 지도하고, 정부측에서는 협상의 ‘초짜’ 인 산자부를 대신해 노련한 협상전문가 풀을 가진 노동부가 나서 수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발전노조는 4,000여명에 가까운 조합원들이 똘똥 뭉친 조직력으로 큰 흐트러짐 없이 파업을 진행해 나갔으며 민주노총은 가두 지원투쟁이나 각계원로를 동원한 여론몰이 등으로 정부를 압박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달랐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초조해진 쪽은 오히려 민주노총과 발전노조측이었다. 예전의 노·정간 협상과는 달리 노동계가 정부에 대화를 요구하는 ‘기현상’ 까지 벌어졌다. 노동계는 ‘민영화 노코멘트’ 라는 양보안을 내놓았으나 정부는 이마저 걷어차버리는 등 강수로 일관했다.

노동계는 이 과정에 방장관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계가 유리한 쪽으로 사태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으나 이를 방장관이 훼방놓았다는 것이다. 방장관은 민영화 문제에 대한 확답을 얻을 때까지 끝까지 밀어붙일 것을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이이제이(以?制?)랄까. 정부는 노동운동가 출신인 방장관을 발전파업사태의 해결사로 내세워 초유의 큰 소득을 얻게 됐다. 반면 노동계는 상대하기 버거운 ‘임자’ 를 만났으며 투쟁경험이 전무했던 발전산업노조원들만 피해자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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