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8개월 뒤에 해고될 예정입니다. 그러므로 회사를 다니면서 지금부터 새 직장을 알아보십시오. ”

2000년 2월 8일 한국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의 서울 구로동 공장 직원 150여명은 윤승기(尹勝基) 사장으로부터 공장폐쇄라는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받았다.

“눈앞이 캄캄했죠. 10년 넘게 다닌 회사로서 내가 애정을 가졌던 만큼이나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경영진이 공장을 돌면서 부서별로 후속 조치를 설명하려고 하는데 일부 직원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어요. ” 박인철 전 부장(45)이 전하는 당시 상황이다.

그러나 회사로부터 퇴직금 지급 규정과 재교육 일정을 들으면서 해고 예정자들의 흥분은 차츰 가라앉았다. 회사 경영진은 10월말 공장 문을 닫을 때까지 월급을 주는 한편 법정 퇴직금과 위로금을 제시했다. 또 재취업에 필요한 전직지원제도(아웃플레이스먼트)를 도입하고 창업지원 교육비를 지원한다는 발표도 이어졌다.

전직지원제도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냉담했다. 초기에는 40% 정도가 참여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참여한 직원들로부터 “괜찮다”는 소문이 나면서 그 해 8월에는 참여율이 90%까지 올랐다.

전직지원제도를 통해 직원들은 자신의 능력을 파악하고 인성 및 적성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 유형을 제안 받았다. 또 창업에 대한 상식이나 법률적 문제를 상담 받았고 이력서 작성법이나 인터뷰 요령 등도 습득했다.

계약을 통해 전직지원제도를 수행했던 DBM사가 마지막 단계에서는 헤드헌팅 회사와 직원들을 연결시켜 주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해고시점’ 인 10월 말경 이 공장 직원 150여명은 ‘자발적 실업자’ 를 빼고는 대부분 새 일자리를 얻었다. 박 부장을 비롯한 사무직원은 대부분 외국계 회사에 재취업했으며 생산직 사원들은 또 다른 공장에 취직했다. 일부는 PC방 또는 호프집 등을 열었다.

구로공장 직원들은 공장 문을 닫던 날 윤 사장을 비롯한 애질런트 경영진을 초청해 식사를 함께 하며 ‘쫑파티’ 를 열었다. 이들은 이후에도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홈페이지를 열어 자주 만나고 있다.

윤 사장은 “제가 공장 폐쇄조치를 본사로부터 전해들은 것은 그 해 1월이었습니다. 본사에서는 당장 알리라고 했지만 설 연휴 때문에 통고를 미뤘죠. 사실 폐쇄 한 달 전에만 통고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리 알려서 대비할 시간을 줘야한다고 생각했죠. ”

“구로공장 폐쇄를 위해 본사에서 지원 받은 자금은 모두 85억원가량입니다. 어마어마한 돈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만일노사분규가 일어났다면 주문 받은 물량을 제때 납품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기업이미지 하락에 따른 손실이 훨씬 컸을테니까요. ”

퇴직 사원 이순탁씨(28)는 “대부분 퇴직 사원들이 애질런트에 대해 여전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어요.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있는 한국에서도 많은 기업이 퇴직프로그램을 잘 도입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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