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구체화되고 있다.

28일 금감위와 채권금융기관에 따르면 정부는 유동성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정주영 전 명예회장 일가의 사재출연, 자금사정 투명공개 등 `고강도 자구계획'을 종용하고 있다.

●정씨 일가 사재출연 종용

정부의 기본적인 시각은 지난 5월말 1차 현대사태때 정부가 요구했던 계열분리 가속화, 경영구조 개선 등으로는 시장분위기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

금감위 고위관계자는 "현대그룹은 현재 시장의 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며 "이미 시장에 약속해놓은 경영구조개선, 계열분리 가속화 이외에 시장신뢰를 회복할 만한 획기적인 자구대책이 추가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 전명예회장의 현대자동차 지분(9.1%)의 처분은 시장신뢰 회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측은 정 전명예회장 일가의 사재출연도 시장신뢰 회복의 계기가 될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자금사정 투명공개

정부는 그러나 정 전명예회장 일가의 사재출연은 자구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천억원대의 사재출연으로 깜짝쇼를 하더라도 시장불안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란 판단이다. 오히려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은 자금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 금감위는 지난 5월말 현대측의 발표대로 국내외 투자가 등을 상대로 대규모 IR(기업홍보)행사를 갖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국내외 투자자와 신용평가기관을 대상으로 재무상태를 입증받으라는 주문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현대측 고위경영자는 유조선으로 바다를 막는 식의 기발한 발상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금융시장 움직임에 순응하면서 그룹의 재무상태를 시장에 성실히 설명하고 즉각적인 자구대책 이행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점진적 자금회수 무기

금감위 관계자는 이날 "현대건설 유동성 문제는 자력으로 해결 가능한 수준"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는 현대측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정부지원도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소한의 유동성은 지원하되 시장으로부터 압력은 방치하겠다는 것이다. 신용평가회사의 무더기 신용등급 강등과 함께 나온 정부의 `현대건설 워크아웃 불가 방침'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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