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는 '역동적 한국: 아시아의 허브'라는보고서를 통해 서울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동경 등 아시아의 잠재적 비지니스 중심도시 5개의 경쟁력을 비교해 본 결과 한국의 서울이 경쟁력이 가장 취약하다고 발표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가장 큰 요인은 경직적 노동시장 즉 취약한 노동유연성으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한국의 노동자들은 회사가 재정적인 위기에 봉착하기 전에는 다운사이징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를 맞은 후에 다운사이징을 해 보았자) 이미 때는 늦다. "고 지적하고 있다. 또 "(한국의) 노동관계법은 경영진과 노동자 사이의 균형을 (다른 어떤나라 보다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실 노동유연성 문제는 한두 번 지적된 고질병이 아니다.

매일경제도 '한국보고서'(1997), '한국재창조 보고서'와 '두뇌강국보고서'(1998), '비전2010 한국경제보고서'(2002)를 발표해 이 문제가 한국경제선진화의 핵심과제임을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조사 발표된 암참보고서가 또 다시 노동유연성문제를 걸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노동자들이 특별대우를 받는 '노동자들의 천국'인가. 통계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2000년 현재 12%로 미국의 13.5%보다 적다. 대만의 38.5% 보다도 훨씬 낮다. 대부분선진국은 모두 20%를 넘고 있다. 조직률이 낮다는 것은 결국 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들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뭔가.

■ 노조지도부 초법적 권한
한국은 '노동자 일반'의 천국이 아니라 '노동자 귀족' 의 천국인 것이다.
누가 노동귀족인가. 바로 조직노동자들이 노동귀족군을 형성하고 있다. 아니 일반 노조원이 노동귀족이라기 보다는 노조 지도부들이 노동귀족이다.

이들이 노동귀족인 이유는 이렇다. 한국의 경우 9할이 비조직 근로자이고 1할이 조직근로자라면 조직근로자들은 일단 선택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것에 그치면 노동귀족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 많은 경우 우리의 노조지도부 들은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노사분규의 단골메뉴인 해고자 복직 및 고소 고발 취하가 그렇고 법은 깨기 위해있는 양 반복되는 불법파업, 교섭대상이 아닌 민영화 반대를 외치면서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발전파업이 그렇다.

이같은 초법적인 권한의 행사는 중세의 귀족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중세의 귀족들은 그나마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이라도 있었다. 즉 귀족의 책무라는 것에 항상 노력했다.

자신의 사유재산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는 것이다. 교회가 필요하면 교회를 짓고 거리의 빈민에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면 이들에게 양식을 제공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노동귀족들은 과연 비조직 노동자, 한계 상황의 노동자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춥고 배고픈 일용직 근로자들을 위해, 서울역 앞 인력시장의 노동자들을 위해 밥 한 끼 따뜻하게 대접한 일이 있는가. 오로지 자기들의 이익 만을 위해 투쟁하고 지도부의 정치적 입지 만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 아닌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기업이 왜 노조결성을 그렇게 반대하는가. 한 대기업의 조사에 따르면 노조를 조직 못하게 하고 복지혜택을 더 부여하는 것이 노조결성에 따른 파업 등 추가비용에 비해 3분의 2이나 싸다고 한다.

한국이 2010년 소득 3만1천달러 (구매력평가기준)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향후 10년간 560만명이 실직 또는 이직이 불가피하다는 게 매경-맥킨지 비전2010보고서의 핵심내용이다.

■ '임금' 보다 '교육' 요구를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는 560만명에 달하는 이직 내지 실직을 용인하지 못할 경우 한국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경직된 노동관행으로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노조가 이러한 노동대변화의 시대에 걸 맞는 투쟁노선을 새로이 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지금 몇 사람 덜 자르고 임금 몇 푼 더 받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노동대변화 시대에 실직 혹은 이직의 위협을 받을 560만 근로자들을 돕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노조지도부가 심각하게 성찰할 때 인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임금' 보다 '교육'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노조지도부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노동귀족 전성시대를 청산하고 진정으로 노동자들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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