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성지'로 알려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는 얼마 전부터 이런 글귀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천주교 명동교회는 농성시위 장소가 아닙니다.” 주일인 지난 17일 미사를 마치고 나온 명동성당 신도 350여명은 성당에서 농성중인 70여명의 발전노조원들을 향해 “물러가라”며 항의했다. 신도들의항의는 노조집행부가 들어온 지난달 25일 이후 매주 일요일마다 계속됐고 성당쪽의퇴거요청 공문도 이미 2차례나 전달됐다.

“발전노조 때문에 명동성당에 경찰력이 들어올 경우, `성지'의 의미가훼손된다. ” 명동성당쪽이 농성노조원의 퇴거를 요청하는 논리다.

오랜 기간동안 각종 시위 농성에 따른 불편을 무던히 참아줬던 신도들의 심정이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경찰이 명동성당을 출입하는 신도들에게까지신분증 제출을 요구하게 된 것은 성당쪽이 경찰에 시설보호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발전노조원들은 명동성당 신도들의 압박에 궁색한 입장이다. “민주화의`성지'인 명동성당마저 우리를 거부하면 갈 곳이 없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명동성당쪽은 “농성이 계속되면 공권력이 성당으로 들어올 수 있고, 나중에 사회적 약자나 민주화운동하는 이들이 피신할 곳이 없어진다. ”고 말한다.명동성당쪽이 말하는 `사회적 약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명동성당은 지난 1975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이곳에서 `인권회복 및국민투표거부운동'을 벌인 이후, 민주화 운동의 터전이자, 쫓기는 사람들의피난처이자, 민중들과 함께하는 성지로서의 역할을 하며 약자들의 `쉼터'로존재왔다. 명동성당은 과거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도 공권력이 감히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옛 명동성당의 문턱은 이처럼 지배자에게는 높고, 약자에게는 참으로 낮았다. 그래서일까, 그때의 명동성당의 권위는 참으로드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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