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25일, 파업이 시작되었다. 기차를 움직이는 노동자들, 전기를 만드는 노동자들, 가스를 공급하는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일어섰다.

예전 같으면 `교통대란', `전력대란',`가스대란' 따위의 무시무시한 언어 공세만 나왔을텐데, 텔레비전에서는 이한동총리가 파업 노동자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집으로 복귀하라”고다소 `자상한' 당부까지 했다.

그러나 바로 그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했다. 수천, 수만의 노동자들이 가정의 행복을 위해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자들의 공통된 요구를 요약하면 첫째가 민영화 반대, 둘째가 해고노동자복직, 셋째가 근로조건 개선이다. 이런 절박한 요구가 이들을 파업에 돌입하게만들었다. 이런 요구들이 노동자들의 행복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우선 민영화 반대의 주장부터 들여다 보자. 얼핏 `민영화'라는 단어는`관영화'라는 말에 비해 `민주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떤 면에서는권위주의적이고 비전문가인 관료들에게 운영을 맡기는 것보다 창의적이고 전문적인민간에게 운영을 넘기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초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가스, 전기, 철도 등은 농업, 주거, 교육,의료 등과 마찬가지로 시장의 이윤 원리에 맡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민주적'이다.

또 지금 계획 중인 민영화는 불행하게도 국내외의 민간 독점 자본에게 그소유권을 넘기는 것이므로 민영화가 아니라 `사유화'라 불러야 정확하다. 진정한대안은 소유권은 공공 영역에 남기되 운영은 전문가와 노동자들이 공동 경영하는것이다. 그래야 효율성과 공공성, 인간성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수 있다.

해고노동자 복직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로 돌아가겠다거나 소득원을 되찾겠다는것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치 독재 정권 아래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이늦게나마 그 공로를 인정받듯, 인간답게 살기 위해 또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운동하던 사람들이 그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법적인 잘잘못을 따지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해고노동자들은 `해고'라는 청천벽력같은 회사의 결정 앞에서 좌절감과 배신감을느끼고 동시에 적개심과 원한, 적대감을 가슴속에 쌓는다.

믿어 왔던 회사에게 배신당했다는 느낌, 옆 동료의 해고를 보면서 행여 칼날이자기에게도 떨어질까봐 위축되는 느낌, 이런 것들이 노동자들의 창의성과 자발성,만족감과 행복감을 억압한다. 이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은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다.

근로조건 개선의 문제는 생활 수준의 문제뿐만 아니라 삶의 질의 문제이기도하다. 2만 명이 일하는 철도 분야에서 한 해에 30명이나 죽는다는 것은충격적이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그리고 다시 밤을 새워 일하고 다음날 아침9시에 퇴근하는 식으로 일하는 철도노동자가 과연 집에 와서 창조적인 일을 하며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철도노조 가족대책위원회의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휴일날 잠만자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여기 와서 다른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다 똑같은 처지였다. ”

그의 결론은 이렇다. “결국 내 남편과 우리 가족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방법은 같이 싸우는 것밖에 없다. ” 더불어 행복해지기 위해서, 인간답게 살기위해서 말이다. 이것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가정을 지키는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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