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도 위원장의 '새로운 노동운동 실험'도 일단 주춤할 듯

서울지하철노조 잠정 합의안 부결로 배일도 위원장을 포함, 10대 집행부가 사퇴하게 됨에 따라 서울지하철 노조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번 부결은 서울지하철노조뿐만 아니라 노동계 전반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 조합원들은 왜 부결표를 던졌을까? = 재교섭, 새로운 지도부 구성 등 큰 혼란을 예상하고도 53%의 조합원들이 반대표를 던진 이유는 잠정 합의안 자체에 대한 불만과 배일도 위원장의 노선에 대한 불신이 동시에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서울지하철노사는 2001년 임단협 협상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던 '행자부 지침'을 큰 틀에서 '형식적 수용, 내용적 보완'의 형태로 마무리했다. 노조는 퇴직금 누진제 폐지, 연월차 휴가 수당 등은 지침을 받아들이되 손실분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공사와 입장을 정리했다. 노조 집행부는 "행자부 지침을 수용하지만 조합원들에게 내용적으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내용적 보완'에 의구심을 보였으며 찬반논란이 계속됐다. 집행부는 해설서, 설명회 등 불이익이 없음을 강조했지만 '부결' 입장을 보인 몇몇 지회에서는 노무사 의견까지 듣는 등 합의안 '개악'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누진제 폐지로 조합원 1인당 몇천 만원 손실", "휴가 축소 등 노동조건 악화 예고" 등 이번 합의안이 행자부 지침도 수용하고 내용도 개악된 것이라는 분석이 현장에 퍼져나갔다. 부결 입장을 표했던 한 지회장은 "잠정합의 안이 심각한 개악이라는 것이 현장에 대체적인 분위기였다"며 "합의안 통과 이후 혼란이 가중되는 것 보다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교섭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합원들에게 힘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한편으로 배일도 위원장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현장 한 간부는 "관치행정 철폐를 요구하며 파업 등 강경 투쟁을 선언했고 수천명의 조합원들이 집회에 참여했지만 결국 애매모호한 문구로 포장한 채 행자부 지침을 그대로 수용했다"며 "조합원들의 반발도 그만큼 컸고 이것이 '배일도 위원장식 노동운동'의 한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엔 퇴직금 누진제 폐지, 휴가축소 등 노조조건 개악이지만 곧 부산지하철처럼 아웃소싱 등 민영화가 가시화 될 것"이라며 "배 위원장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도 반대표를 찍는데 한 몫 했다"고 밝혔다.

■ 부결 이후 파장과 전망 = 배일도 위원장 사퇴에 따라 노조 11대 집행부 구성에 모든 관심이 쏠리게 됐다. 어쨌든 조합원들이 '노사평화', '실리' 등을 내세웠던 배일도 위원장의 노동운동 노선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와는 다른 강성 집행부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신임 집행부는 2001, 2002년 임단협 체결을 위해 '행자부 지침'을 놓고 정부, 공사와 대립할 여지가 높아져, 서울지하철노조가 상반기 노동계 투쟁에 가세할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가 이번 부결로 상당히 부담을 느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배일도 위원장의 '노사 상생' 등 '새로운 노동운동 실험'도 한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3일 서울지하철노사의 평화적 해결 이후 조직적으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전국지방공기업노조협의회도 배일도 위원장이 중심에 있었던 만큼, 힘이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력노조, 서울지하철노조, 공공서비스노련 등이 참여하고 있는 '공공부분노조연대', 서울시투자기관 노사와 서울시가 참여하고 있는 '서울모델' 등 배일도 위원장이 그 동안 심혈을 기우려 추진했던 '새로운 노동운동 실험'도 상당기간 '주춤'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이번 부결 이후 서울지하철노조가 어떤 방향을 선택할 지는 지켜봐야할 문제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지하철 조합원들은 과거 여러 번의 파업 경험 이후, 9대, 10대 '무파업', '실리'를 주장하던 배일도 위원장을 잇따라 선택했다. 노조 한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배일도 위원장의 노사협조주의를 거부했다고 해서 꼭 강성 집행부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며 "서울지하철노조가 다시 한번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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