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에서 성평등 정책이 실종됐다. 여성 정책은 저출생 해법에 치우쳤고, 이마저도 현금성 지원에 집중된 탓이다. 지역구 전체 후보 중 여성은 15%를 밑돌아 22대 국회에서 성평등·여성 정책이 입법화되기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저출생 정책만 초점…이마저도 ‘부족’

여성시민사회단체 140여 곳이 참여한 ‘2024 총선!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는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총선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중앙선관위원회에 올라온 정당별 10대 공약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 2024 총선!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

‘성평등’ ‘여성’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주요 정당 공약에서 ‘성평등’과 ‘여성’ 키워드는 이전 선거에 비해 놀랍도록 찾아보기 어렵다”며 “여성·성평등 정책은 저출산 정책으로 등치되거나, 보건복지 혹은 안전 영역의 하위로 편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저출생 대책이 육아지원과 주거·현금지원에 집중된 점도 비판받았다. 박명숙 한국여성노동자회 부대표는 “과중한 노동과 불안정한 일자리, 성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며 “각 사안별로 대책이 나오기도 했지만 정책 간 유기적 연결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류형림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장은 “아이를 낳아야만 주거·현금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여성이 출산 여부와 시기, 횟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족과 사회의 압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국민의힘 ‘성평등’배제 … 민주당 ‘비전 부족’

정당별 공약을 구체적으로 보자. 국민의힘은 여성·성평등을 완전히 배제했다. 특히 저출생 해결 주체로 인구부를 신설하겠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됐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국민의힘의 배우자 출산휴가 유급 의무화 정책은 주목할 만하지만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인구부에서 주도할 경우 성평등 지향성은 없어지고 가족중심 정책으로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성평등·여성 정책을 10대 공약에서 제외하고 하위 목표로 제시했다. 신 교수는 “세부 사안에서는 정책을 제시하지만, 불균형한 젠더관계 전환에 필요한 비전과 국가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문제의식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제3지대에선 녹색정의당이 성평등·여성 정책의 ‘교과서’란 평가를 받았다. 신 교수는 “10대 의제에서 성평등을 포함한 것은 물론 저출생, 돌봄, 노동과 소수자 인권에서 모두 성평등 가치와 성인지적 관점을 충실하게 통합하고 있다”며 “특히 국가임금격차해소위원회 설립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다만 재정 계획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진보당도 성평등 관점을 통합한 광범위한 입법과 제도를 도입했다는 평가다.

조국혁신당은 성평등을 10대 의제를 다뤘지만 관련 정책이 선언적이고 추상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새로운미래도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했다는 평가다. 개혁신당은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화 등 젠더 갈라치기 위험을 내포한 정책을 했다고 신 교수는 비판했다.

저출생·고령화 사회 핵심 정책으로 꼽히는 ‘돌봄’에 대한 정책 설계가 부족하단 지적도 제기됐다. 류형림 팀장은 “민주당은 정책 제목에서 돌봄 자체가 나오지 않고, 내용도 어르신 점심 제공, 간병비 지원 등에 그쳤다”며 “국민의힘은 돌봄을 언급했으나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아이돌봄서비스 정부 지원을 가족-민간 돌봄으로 전면 확대하겠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성평등 없이 정권심판 불가”

무엇보다 여성 대표성 문제가 심각하다. 전체 지역구 후보 698명 중 14.16%(99명)만 여성이다. 공직선거법은 ‘정당이 지역구 후보를 추천할 때 전체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권고에 그친다. 신경아 교수는 “정권심판론에서 핵심은 성평등”이라며 “대선부터 젠더갈등을 부추친 윤석열 정권에 성평등 민주주의 없는 심판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은 위험한 오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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