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희원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환갑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는 아직도 주 5일 출근을 하신다. 30년을 근속한 회사에서 정년퇴직하시고 이것저것 새롭게 배우시더니, 아예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낫다’며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말씀하더니, 지난해 말 기간제 근로계약 갱신 여부가 결정될 즈음에는 긴장을 하셨는지, 되고 나선 ‘합격’했다며 자랑까지 하셨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솔직히 양가적이다. 그래도 건강하셔서 일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고·다·자(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쉽다)’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과 같은 단어를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무거워진다.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 고령층(55~79세) 경제활동참가율은 60.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취업자 수는 912만명을 넘어섰다.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을 계속하는 인구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에 달하는 우리나라 노인빈곤율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2026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2040년의 평균 기대수명은 86.8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따라 기초연금·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단계적으로 지속 상향 조정되고 있다. 기초연금은 65세부터 수급 가능하고, 국민연금 개시 연령 역시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상향될 예정이다. 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상 법정 정년(60세)를 채우더라도 최대 5년의 공백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공백기를 메우기 위해 이들 중 다수가 향하는 곳은 채용 공고부터 ‘55세 이상인 자’를 대상으로 하는 계약직 일자리이다.

그렇다면 사용자는 왜 ‘55세 이상인 자’만을 대상으로 채용 공고를 낼까? 법이 사용자로 하여금 55세 이상인 사람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 기간의 제한 없이 그 근로자를 기간제근로자로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4조1항 단서 4호, 고령자고용촉진법 2조1호 및 동법 시행령 2조 참조). 55세 이상 근로자의 무기계약직 전환 기회를 박탈해, 이들을 ‘만년 계약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동시에 해당 법률조항은 상시업무에 기간제근로자를 계속 고용하기 위한 편법으로 악용되고 있기도 하다. 업무의 특성이 바뀌는 것이 아님에도, 해당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연령만 55세 이상이 될 경우, 사용자는 해당 근로자를 계속해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정규직 전환’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채용공고 상의 응시자격을 아예 55세 이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기간제법 4조1항 단서 4호는 연령차별이면서 동시에 고령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상시지속적 업무에 기간제근로자 계속 사용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돼 노동시장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해당 법률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기간제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나(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위 조항이 오로지 ‘연령’만을 기준으로 55세 이상 근로자에게 기간제법 4조 본문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55세 이상 근로자의 근로의 권리,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제기된 헌법소원 역시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다.(2023헌바21 기간제법 4조1항 단서 4호 위헌소원 사건)

고령화 시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사회안전망이 확충되지 못한 상태에서 더욱 많은 고령자는 노동시장으로 그야말로 등 떠밀려 나가고 있다. 이들의 근로조건 보호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다른 어떠한 추가적 요건 없이 연령만 기준으로, 특정 연령 이상 근로자에게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될 기회를 완전히 박탈하는 기간제법 4조1항 단서 4호의 문제점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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