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희 한국노총 전략조정본부 국장
▲ 장진희 한국노총 전략조정본부 국장

202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를 기록했다. 올해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수준인 0.6명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6년 2조원으로 출발했던 저출산 예산은 2018년 이후 40조원까지 확대됐고, 급기야 지난해는 50조원까지 확대됐다. 일부 인구정책에서 나름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프랑스와 독일의 저출산 예산이 국민총생산(GPD)의 4%에 달하니 GDP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 예산을 지적하며 증액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문제해결을 위해 중요한 건 예산의 규모가 아니라 정확한 원인진단과 그에 맞는 정책설계다.

물론, 우리나라가 저출산의 원인을 진단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저출산 원인을 파악하고자 하는 연구는 이미 2000년도 초반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이뤄져 왔고 여전히 지속해서 진행 중이다. 결과를 토대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의 반등조차 없는 현실은 현재 저출산 정책을 다시 한번 면밀하게 재검토해야 함을 의미한다. 특히 출산·양육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육아휴직이 그렇다. 육아휴직에 관한 논의는 주로 1년 미만 근속자, 초단시간 노동자 등 육아휴직 법적 사각지대, 휴직 기간, 소득대체율, 남성 육아휴직, 육아휴직으로 인한 불이익과 차별, 경력단절로 정리된다. 이처럼 그간 육아휴직에 관한 정책을 자세히 보면 ‘육아휴직 당사자’를 대상으로‘육아휴직 사용 이후’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육아휴직자에게 육아휴직 기간의 경제적인 측면, 기간, 직장 내 차별 방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즉 ‘육아휴직 사용 전’에 관한 문제지만 현재 그리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사실 이미 수많은 육아휴직에 관한 연구조사는 사용 전 환경의 중요성을 말해왔다. 육아휴직 조사의 단골 질문인 육아휴직 사용의 어려움은 ‘직장동료의 눈치’로 귀결된다. 실제 주변 동료에게 업무가 가중돼 부담될까 봐 눈치가 보여 육아휴직을 꺼린다는 인터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육아휴직의 중요성에 있어서는 무려 90% 이상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인식한다. 대다수는 우리 사회에서 육아휴직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내 주변 동료가 육아휴직을 가서 휴직자의 업무가 나에게 가중되는 상황은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원론적으로 저출산 해결과 사회 전체의 안정 및 존속을 위한 집단적 가치를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은 심리가 상충한다. 결국 집단 기능주의(structural functionalism)와 개인의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의 충돌로 인해 육아휴직을 사용한 휴직자는 주변 동료들 사이에서 죄인이 된다. 친분이나 동료애, 같은 조합원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반면 휴직자는 자신을 이해 못 해주는 동료가 서운하고 미안하며, 불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휴직자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을 채용하지 않은 사용자의 의무는 전혀 논의되지 않은 채 육아휴직은 노노갈등만 유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것이 아닌 자동으로 의무 사용되는 ‘자동의무화’를 주장한다. 육아휴직 자동의무화는 사용률 100%에 달할 수 있다. 그러나 육아휴직자의 업무가 주변 동료에게 가중되는 본질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다. 핵심은 사용자가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지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사용시 기업에 무료로 대체인력을 알선해주는 ‘인재채움뱅크’를 운영하지만 말 그대로 알선에 그친다. 여전히 육아휴직자의 대체인력 채용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므로 휴직자의 업무를 기존 인력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용자가 인건비를 절감하는 동안 육아휴직자와 동료간 노노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눈칫밥을 버티지 못하면 노동시장에서 이탈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을 높이고, 기간을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법 개정을 통해 휴직자 대체인력 채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동시에 지원하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노총 전략조정본부 국장 (jhjang8373@inoch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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