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유권자와 투표자는 다르다. 2010년대 들어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자 성향은 대개 4:4:1:1이었다. 정당 이름은 변했지만, 지금 기준으로 국민의힘 지지가 4, 더불어민주당 지지 4였다. 여기에 진보정당 지지 1, 부동층 1이 더해져 총합 10을 이뤘다. 국민의힘 지지 4와 민주당 지지 4는 흔들림이 없었는데 반해, 진보정당 지지 1과 부동층 1은 변동이 컸다. 특히 부동층 표심의 향배가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신승과 압승을 갈랐다.

4:4:1:1의 흐름은 2020년 총선에서 두드러졌다. 당시 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민심 덕분에 부동층이 지지함으로써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이때도 국민의힘 지지 4는 변함 없었다. 개혁을 넘어 변혁을 바라는 투표자들이 지역은 민주당에, 비례는 정의당에 표를 던졌다. 그 결과 2020년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은 300만표를 넘었다. 정의당이 얻은 표는 270만표였다. 2004년 민주노동당은 277만표를 얻었다.

2020년 총선은 진보정당이 300만표를 넘긴 최초의 선거였고, 필자가 보기에 최대 승자는 정의당이었다. 정의당은 270만표 덕분에 6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정의당이 2016~2020년 국회에서 보여준 성과에 비해 거둔 열매는 좋았다.

정의당은 270만표의 의미와 진보정당 전체가 얻은 300만표의 의미를 제대로 평가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진보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 속에서 2004년 민주노동당의 지지세를 회복했음에도, 이러한 국민적 지지에 주목하는 정의당 이론가는 없었다.

‘듣보잡’ 류호정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워도 다시 한번’ 정의당을 찍은, 진보정치를 열망한 국민들을 향한 정의당의 일성은 “패배해서 죄송하다”였다. 2017년 7월, 이듬해 최저임금 인상률을 역대 최고인 16.4%로 결정했을 때 민주노총의 일성은 “최저임금 1만원 못해 죄송하다”였다. 승리를 패배로 낙인 찍는 우를 범한 이후에 전개된 정의당 선거 투쟁과 민주노총 최저임금 투쟁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국회의원이 된 지 일 년도 안 된 류호정은 중앙일보에 나타나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챙기지 않는다고 공격했다. 자당 의원이 ‘조중동 2중대’가 돼 당의 토대인 민주노총을 공격하는데도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의당 이론가들은 실천적으로 ‘국민의힘 2중대’로 전락한 자당의 처지를 돌아보기보다 ‘민주당 2중대’는 안 된다는 타령으로 일관했다.

‘국민의힘 2중대’와 ‘민주당 2중대’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비과학적 인식은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정점에 달했다. 그 결과,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0.73% 포인트의 의미를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얻은 표는 80만3천여표(2.37%)였다.

이달 초 심상정은 5선 도전을 선언하면서 “다당제 연합정치를 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합정치는 이전의 각종 선거에서 시도되고 검증된 다양한 실천에서 얻어진 ‘신뢰’를 발판으로 삼을 때 가능한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 ‘민주당 2중대’가 연합정치의 시험대일 수도 있었는데, 정의당 이론가들은 그 자체를 비난하고 터부(taboo)시 해 왔다.

2020년 총선의 일등 수혜자인 정의당의 류호정은 윤석열 당선의 일등공신 이준석이 만든 당의 지역구 후보를 지난주 사퇴했다. 그는 정의당 의원일 때 ‘민주당 2중대’가 되면 안 된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제 발로 ‘국민의힘 2중대원’이 됐다.

올해 들어 녹색정의당의 지지율이 진보당보다 낮다. 이는 2020~2024년 국회 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엄정한 평가다. 조국혁신당이 돌풍을 일으키기 전부터 녹색정의당 지지율은 1% 안팎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에서 나순자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비례 1번으로 녹색정의당에 영입됐다.

정의당이 2020년 총선 당시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짰더라면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정통 산별노조 운동가인 나순자는 류호정류의 ‘듣보잡’들이 망쳐 놓은 진보정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깃발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한동훈 체제의 몰락 여부와 함께 눈여겨볼 대목이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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