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강의를 배정받지 못한, 이른바 ‘0시간 강의 계약’에 묶인 시간강사에게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첫 법원 판단이 나왔다. 강의가 없는 학기에 별도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조건을 단 근로계약은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무효라는 취지다. 계약을 맺고도 시간강사에게 강의를 배정하지 않는 대학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임교원 비율 고정’ 주장, 학기 강의 몽땅 미배정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6-3부(재판장 박평균 부장판사)는 경상국립대 시간강사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지난 21일 1심을 깨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사건은 A씨가 2019년 9월 경상대와 정치경제학과 시간강사로 임용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A씨는 이후 1년 단위로 재임용되며 2022년 8월까지 3년간 근무했다. 2020년 2학기에는 주 6시간, 2021년 1·2학기에는 주 3시간씩 강의를 배정받아 매달 보수를 받았다.

그런데 대학은 2022년 1학기에는 A씨에게 강의 자체를 배정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6개월 기간의 급여도 주지 않았다. A씨는 1학기가 끝나자마자 퇴직하면서 그해 10월 휴업수당을 청구하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A씨측은 “대학의 귀책사유로 인해 휴업하게 됐다”며 근로기준법에 따른 휴업수당 358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더불어 휴업수당 상당액에 대한 정신적 위자료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의를 배정하지 않아 강제로 휴직시킨 것은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전임교원과 비교해 차별했다는 것이다.

반면 대학은 A씨에 대한 강의 미배정은 근거가 있다며 맞섰다. 대학측은 “대학원 박사과정 학과는 전임교원 강의 비율을 60% 이상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측은 임용계약서에 “강의가 없는 학기는 별도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정한 점도 근거로 내세웠다. 강의를 배정하지 않은 부분은 A씨를 강의에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란 것이다.

2심 “대학 귀책사유, 불가항력적 요소 없어”

1심은 A씨 청구를 기각했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인해 A씨가 불가피하게 휴업했다는 취지다. 근로기준법 46조1항은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에 사용자는 휴업기간 동안 근로자에게 평균임금의 100분의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조항 입법취지에 관해 항소심은 “근로자가 근로 제공의 의사가 있는데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근로를 제공하지 못하게 된 때 수당 등을 지급해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데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사용자의 귀책사유’에 대해 고의·과실이 없더라도 경영자로서 불가항력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모든 사유로 범위를 확장했다.

이를 근거로 A씨 휴업에는 대학의 귀책사유가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전임교원 강의비율을 60% 이상으로 규정한 운영규정이 ‘불가항력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2019~2021년 학기별 전임교원 강의비율이 57~70%로 들쭉날쭉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반면 A씨가 강의를 배정받지 못한 2022년 1학기는 전임교원 강의비율이 100%에 달했다. 석사과정 학생 3명이 있어 A씨에게 강의를 배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도 봤다.

특히 휴업수당을 사전에 포기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한정해 무효”라며 “사용자인 피고의 귀책사유로 인해 원고가 휴업하게 되면 피고는 원고에게 휴업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재판부는 대학이 A씨에게 2022년 3월부터 같은해 8월까지 평균임금의 70%인 59만8천원을 매달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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