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 1월27일부터 5~49명 사업장까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시행됐다. 그나마 중대재해에 가장 취약한 1~4명 사업장은 이번에도 빠졌다. 중대재해로 죽거나 다치는 노동자의 절반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걸 감안하면 뒤늦은 조치였다.

그럼에도 보수언론은 “중소기업 다 죽게 생겼다”거나 “식당·빵집 사장도 처벌받는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동안 보수언론은 사력을 다해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5~49명 사업장 확대 시행은 수년을 유예했다가 이번에 겨우 실시하는데도 유예기간 끝날 때만 되면 보수언론은 중소기업 다 죽는다고 아우성쳤다.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서.

중대재해처벌법 5~49명 사업장 확대 시행 한 달 반이 지난 3월13일 조선일보가 또 1면 머리기사와 3면을 전부 털어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에 나섰다. 이날 조선일보는 1면 “안전 서류만 37개, 현장 볼 틈이 없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시행되면서 전국 중소기업이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 앵무새처럼 ‘중소기업 대혼란’ 목소리를 반복했다. 3면 ‘중대재해처벌법, 1심서 대표이사 14명 모두 유죄’라는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첫 시행 이후 “지금까지 14건에서 1심 판결이 나왔는데 모두 대표이사에게 유죄가 선고됐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주에겐 큰 부담임을 강변했다.

하지만 법 시행 만 2년이 넘도록 고작 40건 기소해 14건만 1심 판결이 나온 건 중대재해 처벌이 얼마나 하세월인지 보여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1심 선고까지 평균 617일 걸렸다. 사건 발생 이후 기소하는 데만 666일이 걸린 사건도 있었다. 법 시행 2년이 지났지만 고용노동부가 인력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아 사건처리가 지지부진하다. 제대로 된 수사는커녕 회사가 임의제출한 자료에 의존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조선일보는 1심 선고된 14건 모두 기업주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울상이다. 이것도 따져보면 14건 가운데 징역형은 단 1건에 불과하다. 나머지 13건은 모두 집행유예였다. 사람 죽여놓고도 몇 백만원 벌금만 내면 집행유예 받고 멀쩡하게 사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은 사사건건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을 주창해온 조선일보가 만들었다.

1면과 3면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을 강변한 3월13일자 조선일보 12면엔 우즈베키스탄 20대 이주노동자가 생후 6개월 된 아들을 만나러 출국하기 하루 전날 주자창 철거 작업하다가 추락해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소상하게 다뤘다. 조선일보는 고인이 2017년 초 우석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지난해 초 졸업했고, 재학 때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건물 청소, 심부름센터, 택배까지 닥치는 대로 일해서 모든 돈 대부분을 가족에게 보냈고, 이번에도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작업하다가 사고를 당했고, 그 친구와 함께 중랑구에 월세 35만원짜리 빌라에서 살면서 사고 다음날 출국을 위해 싸둔 가방 안에는 아들 주려고 산 장난감과 과자들이 들어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조선일보는 이처럼 숨진 이주노동자의 라이프 스토리엔 충실했지만, 사망사고 자체에는 “노동부가 업체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뭉텅거렸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고인이 “작업 중 발을 헛디뎌 지하 15미터 아래로 추락했다”며 사고 원인을 고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렸다. 조선일보는 건설 등 위험한 공사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로 숨지는 사람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라는 그 흔한 통계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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