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중심 임금체계에서의 고용유연화(해고의 자유)가 정년연장 효과를 가져오고 출산율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취지의 국책연구기관 주장이 나왔다. 직무·성과급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재고용을 정년연장 대안으로 삼고 있는 정부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한 주장으로 풀이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일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을 주제로 삼은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먼저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중장년 임금노동자의 고용불안정성이 높은 수준이고, 그 배경에는 연공서열형 임금구조(호봉제)와 강력한 고용보호가 있다고 주장했다. 호봉제를 유지하기 위해 고용보호 조치가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고용사정을 꺼리는 기업은 중장년층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을 기피한다는 취지다. 이 같은 논리 전개를 바탕으로 연구원은 “해고가 지나치게 어려우면 채용도 감소하게 된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호봉제와 고용보호를 개혁(폐지)하면 정년연장과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제시했다.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고용보호가 매우 약한 편인데도 우리나라보다 근속연수가 긴 편”이라며 “연공서열과 관계없이 개별 근로자에게 생산성 평가에 기초한 임금을 지급해 해고의 유인 자체가 작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특히 “제도적 힘이 아닌 시장의 힘에 의한 안정성 중심이어서 정년연장 부담이 크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19세기 후반 수립된 미국의 해고자유원칙(employment at will)을 수정 없이 답습하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노사 대등성을 전제로 수립된 미국의 해고자유원칙도 노사 비대등성이 확인되면서 예외 조항이 정립되는 등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출산율과 관련해서 연구원은 “출산·육아로 인해 한번 정규직 직장에서 떠나면 다시 복직하거나 정규직으로 재취업하기 어려워 경력단절이 장기화되기 쉽다”며 “경력단절 이후의 복직이나 정규직 일자리로 재취업이 수월하다면 현재 같은 심각한 저출산으로는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출산휴가 등 일·가정양립 제도가 약한 미국을 다시 예시로 삼은 연구원은 “미국은 노동시장이 유연해 복직이나 재취업이 용이해 출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를 책임 집필한 한요셉 연구위원은 “중장년층 조기퇴직과 여성 경력단절을 줄이고, 고령화 파고에 대비해 인력 활용 효율성을 높이고 저출산을 완화하기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시급하다”며 “정규직 임금의 연공성을 완화하고, 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한편 비정규직은 현재보다 보호를 강화해 고용 불안정성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임금체계 개편, 중고령층 노동시장 참여 확대, 청년·고령자 상생 고용, 중고령자 전직·재취업 지원 확충을 바탕으로 한 정년연장 방안을 다룰 예정이다.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한국노총과 직무·성과급 도입을 전제로 한 재고용을 바라는 정부·재계가 충돌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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