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이 재발한 산재노동자가 치료 기간 전체의 휴업급여를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림프종 재발 전 공단 자문의 소견을 근거로 취업치료가 가능하다고 결론내려 비판이 일고 있다. 더구나 공단은 암 환자인 산재노동자에 대한 휴업급여 지급 여부를 판단하면서 정신과 자문의 판단만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재해자는 공단의 결정에 불복해 심사·재심사 청구를 거쳐 휴업급여를 지급받게 됐지만 이미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였다. 공단이 형식적인 휴업급여 지급 판단으로 재해자 고통만 커진다는 지적이다.

암 환자 휴업급여 지급 판단에
정신과 의사 자문만 받아

정이나(37·가명)씨는 2005년 고교 3학년 재학 중 삼성디스플레이 탕정공장에 입사해 생산직 오퍼레이터로 일했다. 근무기간은 길지 않았다. 2008년 말 생리불순과 하혈 등 건강이상을 겪자 퇴사했다.

2017년 4월 비호지킨(소포) 림프종을 진단받았고 이듬해 산재로 인정됐다. 항암치료 끝에 건강이 호전되는 것은 잠시, 2022년 4월 소포 림프종이 2차 재발했다. 정씨는 2022년 7월3일~2023년 1월1일까지를 기간으로 하는 휴업급여를 그해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2022년 1월 내과 자문의 소견을 근거로 취업치료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통원일에만 휴업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암이 재발하기 전 자문의사의 소견을 근거로 취업치료 가능을 결정한 것이다. 취업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주치의 소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정씨는 소포 림프종과 주요 우울 장애를 진단받았는데, 공단은 취업치료 가능 여부에 대해 정신과 자문의사회의 소견만 받은 결과였다. 이 때문에 정씨는 당초 신청한 6개월 중 19일치(통원일) 휴업급여만 지급받을 수 있었다.

공단의 결정은 1년이 넘는 기다림 끝에 바로잡을 수 있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가 내과 자문위원의 소견을 추가로 받으면서다. 종양내과 자문위원은 “청구 기간 동안 재발된 소포 림프종에 대한 항암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진료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판단했다.

김민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암이 재발했는데, 치료제도 듣지 않는 임상시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산재노동자를 해당 진료과목 의사 소견 없이 취업치료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비판했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처리요령 뒤늦게 개정
“두 개 이상 상병 재해자, 종합 판단해야”

두 개 이상의 상병을 가진 재해자의 경우 이를 종합적으로 보고 취업치료 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이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이나씨는) 암과 우울증으로 치료 중인데 자문의 소견을 내과, 정신과 따로 조회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며 “두 상병에 대한 종합적인 환자 상태를 중심으로 취업치료 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주치의는 취업치료 불가라고 했는데, 자문의가 취업치료가 가능하다고 한 경우 자문의사회의 또는 해당 상병 전문의 추가 자문에 따라 결정하도록 지난해 6월 업무처리요령을 개정했다”며 “(정이나씨는) 지침 개정 전 사건이라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공단의 이런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항암치료 후 추적관찰 중인 재해자가 진료계획 연장 승인 당시 취업치료 가능 소견을 받았고, 주치의·자문의의 소견이 동일했다면 암이 재발해도 재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산재보험 개혁 방안이 잘못됐다는 방증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는 “불충분한 요양기간, 휴업급여 지급으로 피해자들은 현재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더 강화하겠다고 한다”며 “특히 질환별로 표준 요양기간을 정한다는 발상은 지극히 폭력적”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해 ‘산재보험 카르텔’ 논란이 일자 근로복지공단을 특정감사했다. 이후 장기요양 유인 요인을 줄이고, 상병별 표준요양기간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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