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 판결 : 대법원 2024. 3. 12 선고 2019다29013, 2019다28966 판결

1. 사건

대상 판결은 원고 109명의 사건(대법원 2019다29013호)과 원고 52명의 사건(대법원 2019다28966호)에 관한 두 개의 판결이다. 2006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에 따라 고용의제와 고용의무로 사건을 구분해서 청구해서 소송을 진행했던 것이다. 원고들은 피고 현대제철 주식회사와 용역도급계약을 체결한 현대제철 순천공장(2013년 합병 전에는 ‘현대하이스코’)의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다. 피고 순천공장은 열간압연강판(Hot Coil)을 이용해 냉연강판 및 자동차용 강판 등을 생산하고, 냉연강판 생산공정은 5가지 주요 공정과 지원업무공정으로 구분되는데, 5가지 주요 생산공정은 ‘① 연속산세/압연공정(PL/TCM), ② 연속소둔공정(CAL), ③ 용융아연도금공정(CGL), ④ 전기아연도금공정(EGL), ⑤ 착색도장공정(CCL)’으로 이루어지고, 원고들은 후처리공정, 물류업무, 크레인운전, 아연드로스업무, 롤샵업무, 기계정비업무, 전기정비업무, 포장업무, 차량경량화(TWB)공정, 유틸리티업무, 실험실업무, 고철장업무 등의 공정업무에 소속돼 그 업무를 수행했다. 원고들은 2011년 7월 피고를 상대로 근로자파견을 주장하며 근로자지위확인 등의 소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2016년 2월18일 1심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제철소 최초로 근로자파견을 인정해 피고 근로자로 고용하라고 판결했다. 2019년 9월20일 항소심 광주고등법원에서도 1심과 같이 판결했다. 피고는 근로자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에 불복해서 대법원에 상고했다.

2. 주장

원고들은 피고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하청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해 피고 순천공장에서 근무했지만, 파견근로자로서 피고 사업을 위해 사용했다며 파견법상 파견근로에 해당하니 파견법에 따라 사용사업주인 피고의 근로자거나(고용의제 사건), 피고 근로자로 고용해야 한다(고용의무 사건)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기존에 파견근로라고 법원이 판단했던 현대자동차와는 달리 혼재작업, 원청 관리자의 작업 지시 등이 원고들이 속한 전체 공정 작업에서 주장하고 입증하기는 어려웠다. 이에 따라 구체적으로 원고들의 업무에 관해 피고가 통합생산관리시스템(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으로 중앙통제실에서 원격으로 통제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MES를 통해 피고의 원고들에 구체적인 업무 지시 등 지휘명령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사내협력업체는 고유한 기술이나 자본이 없이 모집한 인력만을 피고의 생산조직에 투입하는 역할에 그치고, 이윤 창출 및 상실 위험도 부담하지 않으며, 피고가 원고들에게 작업내용을 결정·지시하고 휴게, 연장, 야간근로 등을 결정해 노무관리를 하는 등 나머지 근로자파견의 판단요소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피고는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내하청업체가 원고들을 사용한 것이라며 파견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원에서 기존 파견근로로 인정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과 같은 혼재작업이나 원청 관리자의 작업 지시 등이 존재하지 않고, 나머지 근로자파견의 판단요소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MES를 통한 원하청의 생산 방식은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에서 사용된다며 이를 지휘감독 행위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두 사건 모두에 관해 1심 광주지법(순천지원)은 원고들 주장과 같이 MES에 주목해서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지휘명령했다고 인정하고서 파견근로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광주고등법원에서도 마찬가지로 판결했지만 피고는 MES를 통한 지휘명령은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파견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원고들은 원심과 같은 주장으로 답변했다.

3. 판결

대법원은 원심과 다르게 판결했다. 고용의제 사건의 원고 109명 모두에 대해 파견근로가 인정된다고 봤으나, 고용의무 사건은 원고 52명 중 11명은 파견근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고들은 기계정비와 전기정비, 그리고 유틸리티 업무를 수행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대상 근무기간 동안 계속해서 피고가 원고들의 작업 수행을 지시했는지 등을 알기 어렵다며 피고와 원고들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여기서 대법원이 피고 현대제철 순천공장의 주요 생산공정과는 달리 유틸리티 공정이나 기계정비와 전기정비 등 정비 업무 등 그 공정업무나 정비업무 등의 특성에 주목해서 파견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같은 공정 업무, 정비 업무에 종사한 고용의제 사건의 원고들은 원심과 같이 파견근로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는 점을 볼 때 타당한 생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4. 평가

이번 대법원 판결은 무엇보다도, 제철소에서 원청 사업주가 MES를 통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작업 수행토록 한 것이 지휘명령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파견근로에 대한 판단이 타당하다고 인정된 데 의의가 있다. 현대차 사건에서 대법원은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는 △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당해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다섯째,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한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의 판시 내용에 MES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MES를 통한 작업 수행에 관해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상당한 지휘·명령을 인정한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는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원청의 전산관리시스템의 통제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 파견근로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원청 사업장에서 사내하청 근로 대부분은 파견근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고용의무 사건의 원고 일부에 대해 파견근로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유감이다. 특히 대상 근무기간 동안 계속해서 지휘명령 등 근로자파견의 판단요소가 존재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견근로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에게 입증 부담을 가중시키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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