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언젠가 학교 건물 1층 복도엔 페인트 시너 냄새가 진동했다. 낡고 무거운 소파 양쪽에 벌려 두고 청테이프 부욱 뜯어 흰 천 팽팽하게 고정한 뒤, 그 위로 붓 놀려 글을 새겼다.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이 빠르고 유려했다. 주로 무언가를 규탄하거나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대개 힘찬 기운을 가진 글씨체는 교정 곳곳의 분위기를 한동안 좌우했다. 종종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체가 혜성처럼 나타나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별똥별의 운명에 그쳤다. 손재주 없던 나는 페인트 마르기를 기다려 높은 곳 올라 거는 일을 전공으로 삼았다. ‘쎈타’와 수평을 맞추는 데에 공들였다. 헐거워질 것을 감안해 꽉 잡아매는 등 숙련공의 길을 걸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거리에 현수막 전쟁이 시작됐다. 역시나 돈 주고 맞춘 것이라 때깔이 좋다. 때맞춰 길에 나서 각종 요구안을 밝히는 사람들 현수막도 그렇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붓 놀려 구호를 적지 않는다. 하지만 시선을 잡아라, 현수막 본연의 사명엔 변화 없다. ‘쎈타’ 맞추고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일이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니 궂은 일 마다 않는 사람이 언제나 그 끝을 꽉 잡고 마치 거기 없는 사람인 듯, 말뚝처럼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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