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나 변호사(해우 법률사무소)

우리 집에는 마치 본인이 어른인 줄 착각하는 만 6세 남자아이가 있다. 어휘력이 일취월장해 빈말로 ”따뜻해지면 놀이공원에 가자“는 식의 말을 늘어놓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된다. 나도 내가 한 말이 있으니, 이제 막 세상을 배우는 아이에게 약속을 뒤집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누구보다 약속을 중히 여겨야 하는 교육 현장에서 교육감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아 3년째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지역이 있다. 강원도 강릉에 있는 유천초등학교 혁신학교 지정 취소 및 교사에 대한 부당징계 사안이다.

유천초등학교는 2020년 3월1일 개교했고, 동시에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그런데 개교 1년이 지난 2021년 7월 감사가 개시됐고, 강원도교육청은 2021년 8월께 ‘비합리적 의사결정 구조에 의한 학교 운영, 구성원 간 지속적 갈등 유발’이라는 학교 구성원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유천초의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했다. 또 혁신초등학교 운영 과정에 참여한 교사 3명의 행위를 문제 삼아 징계(중징계 1명, 경징계 2명)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징계 교사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공대위는 “편파적인 표적 감사, 일방적인 혁신학교 지정취소 통보, 정당하게 문제 제기한 교사 3명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며 강원도교육청 앞마당에서 2021년 11월부터 천막농성을 이어 갔다.

그러던 와중에 2022년 7월1일, 신경호 강원도교육감과 유천초 공대위가 전격적으로 합의에 이르게 됐다. 신임 교육감이 취임 첫날 직접 천막을 방문해 합의안에 서명한 것이어서 진정성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합의는 천막농성이 8개월 가까이 지속되고 단식농성까지 하는 상황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실마리로 보기에 충분했다. 강원도교육청도 이를 신임 교육감의 ‘소통과 포용’의 철학에 따른 행보라고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홍보했고, 공대위는 합의안을 믿고 농성을 해제했다. 합의서에는 징계교사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 인사조치한다는 표현이 명확히 포함돼 있었다.

결과적으로 합의는 약 1년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징계 교사들은 정기인사와 비정기인사가 계속 이뤄지지 않자, 강원도교육감과 조율해 지난해 3월27일 면담일정을 잡았다. 이때 2022년 3월1일자 정기인사 이후 비정기인사 단행에 관한 입장을 확인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교육감은 사전 얘기 없이 당일 면담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다음날인 지난해 3월28일 경찰력 약 30명이 징계 및 인사발령 당사자인 3명의 교사를 포함한 공대위 소속 5명을 연행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은 지난해 4월께 퇴거불응 혐의와 관련해 교사 한 명에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억울’은 누를 억(抑)자와 답답할 울(鬱)자가 합쳐진 단어다. 답답함이 억눌린 심정을 뜻한다. 내가 목도한 ‘억울함’의 모습은 사회가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 방식으로 한 개인과 집단을 억누를 때 나오는 탄식이었다. 징계 교사들은 교육감 취임 첫날 ‘소통과 포용’의 모범사례로 소비됐지만, 결국 합의는 이행되지 않았다. 합의를 이행하라는 정당한 요구를 하자, 이번에는 교육감이 협의된 일정에 참석하지 않으며 마치 당사자들을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으로 대했고, 적반하장으로 경찰력을 동원해 퇴거불응 혐의로 연행했다. 문자 그대로 ‘억울’한 상황이다.

신경호 교육감은 늦었지만 2022년 7월1일 합의를 이행해 징계 교사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복직시켜 ‘소통과 포용’의 교육감다운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합의 이후 발생한 각종 분쟁을 야기한 장본인이 본인이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도 본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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