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흡 한반도메밀순례단장

2022년 11월30일 평양냉면 풍습(Pyongyang Raengmyon custom)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메밀을 주재료로 만든 차가운 국수인 평양냉면은 북한에서 오랫동안 계승돼 온 음식이다. 고기, 김치, 채소, 과일, 고명을 놋그릇에 담아 얹어 낸다. 시원한 육수나 동치미, 김칫국물을 면 위에 부어 주면 완성이다. 평양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 민속 요리로 장수, 행복, 환대, 유쾌함, 존경, 친밀감, 유대감을 북돋는다.” 유네스코는 특정 음식을 지정하지 않는다. 2015년엔 김치 담그기 풍습이 등록되었다.

조선 후기 홍석모의 동국세시기(1849년)에서는 11월 음식으로 평양냉면과 동치미를 소개하고 있다.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것을 냉면이라 한다. 관서지방의 냉면, 그 가운데서도 평양냉면의 맛이 가히 일품이다. 작은 무로 담근 김치를 동침(冬沈)이라 한다.” 조선 후기, 이미 평양냉면은 동치미와 함께 민족의 세시풍습으로 자리 잡은 겨울철 별미였다. 동치미는 고려 시대에 기록이 확인되는 우리 김치의 근본이다. 무, 소금, 물이 햇볕, 바람, 별과 숨 쉬며 빚어 낸 맑고 시원한 풍미의 원천이다.

2001년 홍천의 ‘장원 막국수’는 동치미 순메밀막국수의 성지였다. 메밀로 대성공한 고기리장원막국수(현재는 고기리막국수) 주인장 부부도 이곳에서 사사했고 지금도 전국에 산재한 장원막국수의 원조 본가였다. 정종문·이경희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2020년 홍천을 떠나 강화도로 이주, ‘강화장원막국수’를 열었다. 현재는 ‘서령’으로 평양냉면의 진수를 펼치고 있다. 100% 메밀면. 메밀 반죽시 소금을 넣지 않는다. 수급에 따라 메밀 원산지는 가리지 않지만, 추운 지역 1모작 메밀, 몽골과 중국산 메밀을 쓴다. 100% 양지와 사태 육수, 강화도산 한우 암소, 채소를 사용해 새벽 4시부터 6시간 정성껏 끓여 낸다. 깊으면서도 뒷맛이 깔끔하다. 면을 섞은 뒤 염도는 1.0, 육수 온도는 15도. 첫맛은 짭짤한 소금 맛. 육수와 메밀면이 생동감 있게 어울리며 육수의 맛은 나중에 올라온다. 너무 차지 않은 시원함이 메밀면을 돋보이게 한다. 체면 불고하고 남김없이 비울 만큼 매력적이다. 나트륨 과다 섭취 경고를 가볍게 넘어선다.

고명으로 낸 사태 편육은 육수에 담겨 있다. 부드럽다. 차갑게 올린 편육은 보통 나무껍질마냥 딱딱하고 가끔 비린내를 풍기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삶은 달걀 반 개, 달걀 지단, 껍질과 속을 얇게 채 낸 오이가 오른다.

고춧가루 무채와 초절임 무채가 기본 찬. 순메밀면의 담백함에 얹히는 무채가 인상적이지만 당도가 높아 호불호가 갈린다. ‘맛’은 신뢰 속 심리적 안정감이 있을 때 최적화된다. ‘꼭 흙 묻은 채소와 재료를 다듬어 쓴다’는 주인장의 생고생 음식 철학. 하루 200~300그릇을 한정 판매한다. 홍천에서 순메밀면과 동치미에 바쳤던 두 부부의 헌신과 열정이 강화도에서 한우 육수에 담겨 평양냉면 한 그릇으로 부활하고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이 강화도 서령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정성을 주고받는 소중한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찾아가는 곳이다.

*매일노동뉴스 지면에 이 칼럼이 게재된 뒤 강화도 서령이 영업을 멈추고 서울 숭례문 부근으로 이전을 준비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 홍천→강화도를 거쳐 서울 숭례문으로 서령이 온다. 4월 중순 즈음 개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강화도 서령 자리에 ‘설령’이란 상호로 냉면집이 운영되는데, ‘서령’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한반도메밀순례단장 (pshstart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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