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윤석열 정부가 4·10총선을 앞두고 증시 부양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상장기업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도록 하는 ‘밸류업(value-up)’ 정책을 내놨다. 윤 대통령이 지난 1월 네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겠다고 말한 데 따른 것이다. 그에 앞서선 공매도를 중단하고, 대주주 주식양도세를 완화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도 추진한다.

코스피 지수는 우상향 중이다. 하지만 이벤트성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근본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20년 넘게 증권업에 몸담은 김기원(51·사진)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장은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폐에 암이 생겨서 기침하는데 감기약 먹는다고 낫겠냐”고 반문했다.

김 본부장은 한국 기업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통해 압박하거나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 적립기금 고갈로 한국 주식시장의 ‘시한부 상태’를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꼽으며 연금개혁에서 국가재정 투입을 논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 정부가 연일 주식시장 부양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전 세계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부터 양적완화 정책이 이어졌다. 유동성을 공급하고 금리를 낮춰 금융위기 불을 껐다. 코로나19 팬데믹 땐 양적완화 규모가 두 배 늘었다. 문제는 부동산 가치가 너무 상승하면서 세대 간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것이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란 말이 있지 않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목한 게 주식시장이다. 주식시장에선 승자와 패자가 없다. 주가가 오르면 모두가 행복하다. 전 세계 정부가 주가를 부양해 자산효과(Wealth Effect, 자산가치가 상승하면 소비도 증가하는 현상)를 만들려고 한다.”

-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을 평가한다면.
“기업 자율성에만 맡겼다는 게 문제다. 강제성이 없으면 어떤 대책이든 실패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유주 지분이 많은 기업은 주가 올라가는 걸 싫어한다. 주가가 올라가면 자식에게 물려줄 때 세금만 많이 나오지 않나. 금융위기에 주가가 폭락하면 주식 증여가 폭증한다. 일본의 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참고했다고 하는데, 일본이 성공한 이유는 강제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돈을 찍어 내 주식(ETF·상장지수펀드)을 직접 사들였다. 정부가 지분을 가지고 있으니 기업이 배당을 안 하면 압력을 가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방법이 있다. 국민연금을 동원해 기업을 압박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주요 기업 지분을 10% 내외로 가지고 있다. 충분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이사회 거수기 노릇만 한다. 국민연금이 2020년 3월 조용병 당시 신한금융지주 회장 연임을 반대했으나 끝내 연임했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으니 지분을 팔았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은행주가 대표적인 저 주가순자산비율(PBR)인 것도 마찬가지다. 은행은 다른 재벌 대기업과 달리 소유주가 없다.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역할을 했다면 어떻게 규제산업 PBR이 1 밑으로 떨어질 수 있겠나.”

- 주주 행동권을 강화해 소유주를 압박하자는 방안도 나온다.
“소액주주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집중투표제(1주 1의결권이 아닌, 2명 이상 이사 선임시 1주당 선출한 이사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를 의무화해야 한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인데, 현실에선 소유주다. 소유주를 직접 견제하려면 소액 주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 세계에 도입된 장치가 집중투표제다. 우리 상법에도 명시돼 있지만 의무가 아니라 도입한 기업이 없다. 공공성을 위해 금융회사만이라도 의무화하자는 법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법이 또 있을까.
“한국 주식시장의 시한부 인생을 끝내야 한다.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2040년 최대 정점(1천755조원)을 찍고 점차 감소해 2055년 소진된다고 한다. 주목할 건 고갈 시점이 아니라 그래프가 정점에서 꺾이는 시점이다. 적립기금이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건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동안 투자했던 자산을 팔아서 지급해야 한다. 빠르면 2037년부터 자산 매각이 시작될 것이다. 국민연금은 투자비율을 기계적으로 맞추는 경향이 있다. 해마다 몇십 조에 달하는 매물이 계속해서 쏟아질 텐데 누가 이걸 다 매입할 건가.

연금개혁에서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는데, 국가재정 투입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의 국가 기여도는 0이다. 국내총생산(GDP)의 1% 규모만 재정을 투입해도 고갈 시점을 100년 이상 뒤로 미룰 수 있다. 법인세 깎아줄 돈으로 국민연금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2027년까지 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을 14%로 줄이겠다고 했다. 대신 해외 주식 비중은 40.3%로 높인다. 국내 증권노동자로서 걱정스럽지만, 국민연금 수급자로선 지지한다. 곧 기금이 고갈되고 한국 주식시장은 죽을 텐데 빨리 해외 주식시장으로 이동해야지 않겠나. 이러한 비극적 투자를 막으려면 하루 빨리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결해야 한다.”

- 금융 자산을 확장하는 분위기 속에 고위험 투자상품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반복되는 고위험 투자상품 사고를 막기 위해선 선취수수료를 없애야 한다. 펀드 가입시 대부분 유지 수수료는 미미하고 판매 시점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고위험 투자상품일수록 수수료가 세다. 정말 고수익이 나는 좋은 상품이라면, 수익이 달성됐을 때 받으면 된다. 사고가 발생하면 손실 입은 고객이 가장 불행하겠지만, 판매한 노동자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형 사고마다 스스로 목숨을 달리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100억원, 200억원 수수료 벌다가 (사고가 나면) 1천억원씩 물어줘야 하는데 왜 이렇게 장사를 해야 하냐고, 사용자들 만나면 맨날 하는 말이다. 하루하루 성과에 매달리는 관행을 버려야 한다. 물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돈을 많이 벌어 배당을 열심히 하자고 했지만, 금융 공공성 차원에서 꼭 필요한 이야기다.

증권노동자들도 성과주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실적 압박에 떠밀려, 성과급에 눈이 멀어 고위험 투자상품을 손님들에게 넘기면 안 된다. 지난달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자본시장법상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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