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 공인노무사 (퀴어동네 운영위원)

“차별이 뭘까요?” 지난해 퀴어동네는 ‘퀴어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이라는 주제로 여기저기서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 중간중간 참가자들에게 경험과 생각을 물었는데, 그중 하나의 질문이었다. 누가 노무사 아니랄까 봐 ‘같은 것을 다르게, 다른 것을 같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한 참가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별은 화장실이예요.”

태어났을 때 지정된 성별과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트랜스젠더에게 화장실은 집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피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된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은 일정 규모 이상의 공중화장실은 남녀를 구분해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필수 장소지만 성별 이분법 그 자체인 공간 앞에서 트랜스젠더는 고민할 수밖에 없고, 이 문제는 자신이 정체화하는 성별로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경우 더욱 커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트랜스젠더 당사자 589명 중 40.9%가 남녀 성별이 분리된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부당한 대우나 불쾌한 시선이 두려워 자신의 정체성과 다른 성별의 시설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 화장실에 가는 것을 피하려 음료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지 않은 경우도 39.2%나 달했다. 거리가 멀어도 남녀공용이나 장애인 화장실 등을 이용했던 경우(37.2%), 아예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경우(36.0%)도 상당했다. 화장실 문제는 직장에서도 심각하게 발생한다. 트랜스젠더 노동자 156명에게 정체성과 관련해 현재 직장에서 경험한 부당한 대우나 어려움에 대해 물었더니, ‘직장 내 화장실, 탈의실, 휴게소, 헬스장 등을 이용할 때 겪는 어려움’(26.9%)을 1위로 꼽았다.

현재의 성별 이분법적 화장실은 트랜스젠더만의 문제는 아니다. 트랜스젠더 ‘남성’이나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닌 논바이너리(성별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남성’과 ‘여성’에 국한하지 않고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정체화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겉모습이 ‘여성답지 않은’ 시스젠더(성별 정체성이 자신의 지정 성별과 일치하는 사람) 여성이나 ‘남성답지 않은’ 시스젠더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매번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최근 가장 크게 이슈였던 것은 2022년 성공회대에서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설치한 ‘모두의 화장실’이다. 성별 이분법적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보다 더 확대된 개념의 공간으로,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비롯해 휠체어 장애인, 성별이 다른 활동지원사와 활동하는 장애인, 생리컵을 쓰는 여성,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이와 어르신 등 평소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모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설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시민단체의 민원에 의해 폐쇄될 위험에 처했지만, 지난 2월 다행히도 존치 결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성공회대에 이어 KAIST와 서울대에도 ‘모두의 화장실’ 바람이 불고 있다.

대학 다음은 단연 직장이다. 학생들이 직장인이 되고 나서도, 차별받지 않고 혐오와 폭력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필요하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성공회대에서 ‘모두의 화장실’을 만들고자 한 학생들도 ‘그게 필요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냐, 그 몇 사람을 위해 그만한 비용을 쓰는 게 가치 있는 일인지 증명해 보라’는 말을 수없이 마주하며 무려 5년 만에 설치에 성공했다. 직장에서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도 같은 질문을 마주하겠지만, 돈보다 노동권이, 오줌권이, 생존권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한다면 변화는 오지 않을까. ‘모두의 화장실’을 위한 논의가 더욱 널리 퍼지기를 기대한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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