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욱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이진욱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고향 아일랜드로 10년 만에 돌아온 지미에게 마을의 청년들이 간청한다. 문이 닫힌 마을회관을 다시 열어달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춤추고 싶다고. 켄 로치 감독의 2014년 작 ‘지미스 홀’(Jimmy's Hall)은 민중과 그들의 공간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룬 영화다. 영화 속 아일랜드 지배층은 민중이 자신들의 공간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때로는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민중이 그들의 공간을 갖는 것을 두려워해 필사적으로 마을회관을 닫으려고 한다. 20세기 초반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낯설지 않다.

2014년 서울시 A버스회사에 새로운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노조는 버스노동자 근로조건 개선을 적극 요구하며 조합원을 점차 늘려갔다. A사는 기존 노동조합에 비해 적극적인 모습이 전혀 달갑지 않다. A사는 새로 생긴 노조를 무시하기로 한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교섭대표노조로 선정된 기존 노조만 사측의 대화 상대가 된다. 소수노조는 2017년 노동위원회를 통해 사용자와 교섭대표노동조합이 근로시간 면제시간을 배분하지 않은 것이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인정되기 전까지, 근로시간 면제를 전혀 받지 못했다.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노조사무실 역시 제공받을 수 없었다.

법원은 소수노조에 노조사무실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여러 차례 판시했다. 대법원 판결(2018. 9. 13. 선고 2017두40655)은 “노조의 존립과 발전에 필요한 일상적인 업무가 이뤄지는 공간으로서 노조사무실이 가지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소수 노조에게도 상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정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판단은 소수노조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공간을 보장받지 못하던 서울지역 버스 노동조합들에게 하나의 가능성이 됐다.

A사를 비롯한 서울지역 버스회사의 소수노조들은 노동위원회에 공정대표의무위반 시정을 신청했다. 노동위원회 사건을 담당한 노무사는 노조사무실로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19개 버스회사의 차고지를 찾아다녔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회사에는 노조사무실로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A사도 마찬가지였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A사와 교섭대표노조가 소수노조에게 노조사무실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공정대표의무 위반임을 인정하고 이를 시정할 것을 명했다.

노동위원회 판정 결과에 따라 대다수 버스회사는 소수노조에 사무실을 제공하게 됐다. 그러나 A사는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진행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A사가 사용 중인 차고지에는 남는 공간이 많아 추가로 사용허가를 받으면 노조사무실로 제공이 가능한데, 그 비용은 한 달에 3만원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A사는 공석인 영업소장의 사무실을 몇 년째 사실상 비워두고 있었다. A사는 그럼에도 유휴공간이 부족하다면서, 교섭대표노조 사무실을 분할 사용하는 방안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가 교섭대표노조에게만 노조사무실을 제공한 것은 공정대표의무라는 취지의 판결이 선고됐다.

소수노조에 차고지 내 공실을 제공하는 경우, 추가로 드는 비용은 한 달에 3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A사가 그보다 훨씬 큰 쟁송 비용을 지불하면서 공정대표의무 위반에 대해 다투는 것은 결국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노동조합이 노조사무실을 토대로 활동하며 조합원을 모집하고, 버스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관련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막으려 한다.

A사는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했고, 아직 소수노조는 독립된 사무실을 제공받지 못했다. 노동위원회의 판정과 법원의 1심 판결은 2014년 설립 이래 꾸준히 버텨온 노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이어질 소송의 시간을 지나 소수노조가 결국 독립적인 노조사무실을 쟁취할 수 있길 염원한다. 지난한 차별의 시간을 이겨낸 민주버스의 목소리가 차고지에 가득 찰 그날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