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가현 노동활동가

이주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명분은 ‘저출생’이다. 육아와 집안일에 여성들이 부담을 느껴 출산을 하지 않으니까 낮은 비용으로 육아와 집안일을 대신할 사람을 구하자는 것이다. 고령화로 돌봄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값싼 인력을 수입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주장부터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의 가사노동자 임금이 높다는 주장까지 남발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돌봄서비스 인력난과 비용 부담을 완화하자며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거나 외국인에 대한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해 해당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자”고 제안하는 조사 결과를 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러한 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중·저소득층을 위한다며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월 100만원 임금(이용료)을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 ‘초’저임금을 양산하자는 주장이다. 여러 우려에도 해당 주장을 계속 반복하는 오세훈 시장을 여성단체가 비판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가사·돌봄노동의 가치를 폄훼하고 외국인 노동자 차별에 앞장선” 오 시장을 ‘성평등 걸림돌’로 정해 비판했다. 서울시는 “좌파단체의 정치적 공격”이라고 반응했다.

국회에선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뜻을 맞추고 있다. 조정훈 의원은 과거를 잊었다. 과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한국판 뉴딜 일자리는 “최저임금 주는 쓰레기 일자리”라 비난했던 조 의원은 쓰레기 일자리보다도 더 쓰레기인 일자리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자고 한다. 지난해 조정훈 의원은 “육아하는 맞벌이 가정을 중심으로 가사근로자가 필요함에도 찾기 어려워서 일과 가정의 양립이 위협받고 있다”며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심지어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주는 효과는 여성에게 마치 세탁기가 없을 때와 세탁기가 있을 때의 삶하고 비슷하다”는 말까지 했다.

오 시장이 띄우고 조정훈 의원이 동조한 이주 가사노동자 착취 계획을 윤석열 정부는 실현하려 하고 있다. 지난해 100명의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 입국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실패했다. 필리핀 정부와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육아와 가사는 별개의 전문 영역으로 생각하는 국제적 현실을 무시하고 싼값으로 가사와 육아 모두 해치워버리려는 태도를 고수한 결과다.

여성을 위한다는 이들의 말에는 여전히 가사노동과 육아를 여성의 몫으로만 남겨놓는 전제가 깔려있다. 사람을 세탁기에 비교하는 비인권적인 발언은 ‘팩트’ 마저 틀렸다. 세탁기가 발명됐다고 여성들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한 건 아니다. 위생과 청결에 대한 기준은 높아져 세탁의 횟수와 양이 늘어났고 부담도 늘어났다. 높아진 기대치는 여성에게 죄책감을 줬다. 세탁 외의 다른 가사노동의 양과 목표치도 올렸다. 그리고 여전히 빨래, 청소, 요리, 육아는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다.

육아와 가사노동이 값싼 노동인가. 저임금으로 하기 싫은 일을 해치워버리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대한 폄하로 이어진다. 여성이 주로 해온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데 누가 그 노동을 하려 할까. 정부와 여당은 저출생을 막기 위한 정책이라 한다. 그러나 육아와 가사에 대한 폄하는 저출생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가사노동과 육아를 값싼 노동 취급하며 사회적 인식을 악화시키는데 출생률이 올라갈 것을 기대하는 건 허무맹랑한 궤변이다.

엄마에게서 아내로 미뤄온 가사노동을 이제는 이주 여성 임금노동자에게 미루자고 한다. 가사노동이 외국인 차별에 기대 헐값에 해치워지는 사이 우리는 더 낮은 임금을 향해 바닥으로 경쟁하게 될 거다. 육아할 수 있는 권리는 사라지고 장시간의 노동은 계속될 것이다. 가사노동자법(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고 성평등한 노동환경을 이야기하고 가사노동의 가치에 주목했던 성과를 지금의 정부와 여당은 뒤로 돌려놓으려 한다. 우리는 이미 차별과 불평등의 채점표를 받아 봤다. 헛짓거리하는 동안 저출생은 계속된다.

노동활동가 (bethemi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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