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

“암만큼 무서운 게 빈곤 아닌가요?”

30대 유방암 환자 쟤(정지혜)의 말이다. 다른몸들에서는 2020년 아픈 몸으로 사는 시민들을 공개 모집해서, 자신의 질병 경험을 담은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무대에 올렸다. 당시 유방암 환자 쟤는 일자리를 구하러 고용센터에 상담갔다가 고용센터 직원에게 저렇게 말한다.

구직 상담 중에 고용센터 직원이 ‘아픈 사람이 왜 일을 하려고 하냐’며 핀잔을 줬기 때문이다. 쟤는 분노하면서 ‘약값이 한 달에 수백만 원에 달하고, 의사가 일해도 된다고 했으며 적당한 노동이 오히려 건강에 이롭다고 권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고용센터 직원은 실업자 구직 프로그램이 귀한 세금으로 운영된다며 냉랭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아픈 몸도 시민이라는 사실은 간과된다.

질병으로 인해 직장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말한다. 건강이 우선이지, 돈이 우선이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건강도 없다. 알다시피 소득이 적을수록 많이 아프고 일찍 죽는다. 가난할수록 질병 발병률이 높고, 충분한 치료가 어려우며, 질병 관리는 더 어려워진다. 가난하면 아프기 쉬운데, 아프면 노동시장에서 탈락하고 더욱 가난해진다. 삶이 힘든 게 질병 때문인지 빈곤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세계적으로 암 경험자가 증가하면서 생존을 넘어 삶의 질을 주장한 지 오래다. 한국은 매년 20만명 이상의 암 경험자가 새롭게 발생한다. 그리고 기대수명(83.6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8.1%로 3명 중 1명에게서 암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하며, 10년 상대생존율은 67%다.(국가암정보센터 ‘통계로 보는 암(2022)’)

그리고 수많은 암 경험자들은 ‘암과의 투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일자리 지키기 투쟁에서는 패배했다’고 말한다. 일자리는 생존이다. 동시에 암으로 인해 병원과 집으로 유배됐던 삶으로부터 회복이며, 삶의 통제권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암으로 인한 실직의 고통이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강도로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낮고 교육 정도가 낮은 집단일수록 암 경험 이후 직장 복귀가 더 어려웠고, 국내 거의 모든 연구에서 여성 암 경험자의 실업률이 남성보다 높았다.

다시 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쟤가 30대 비혼여성이 아니라, 결혼한 유자녀 30대 남성이었다면 어땠을까? 고용센터 직원은 아픈데 왜 일하려고 하냐며 힐난하기보다, 아픈데도 ‘가장’의 책임을 다하느라 힘들겠다며 위로를 건네지 않았을까?

마치 90년대 외환위기 직후 ‘고개 숙인 아버지’를 위로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에는 농협 사내부부 해고 사건처럼 노골적인 여성 우선 해고가 횡행했고, 외환위기로 인해 집중적으로 직장을 잃은 사람은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20대 사무직 여성’이었다. 그리고 사무직에서 해고성 비자발적 이직은 남성 9.7%, 여성 43%다.(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여성 해고 실태와 정책 과제(1999년)’)

그러나 정작 당시 사회는 여성의 해고와 빈곤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사회 전반은 중년 남성의 해고에 감정이입해서 안타까워하며, 진보·보수언론 할 것 없이 실직으로 힘든 남편이나 아버지 기가 죽지 않게 온 가족과 사회가 배려해 줘야 한다는 기사를 앞다퉈 싣기도 했다. 그리고 그사이 자본은 여성을 필두로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를 확장시켜 갔다. 우리는 그때로부터 얼마큼 나아갔을까.

남성 실업률도 높은데 여성 실업률은 나중에 챙기자거나, 건강한 사람의 실업률도 높은데 아픈 몸의 실업률까지 챙겨야 하냐는 사고(思考)가 사고(事故)를 만든다. 우리의 몸을 끊임없이 선별하고 서열화하는 차별적 사고와 제도가 개인의 몸을 병들게 하고, 아픈 몸을 더욱 사회적 통증에 가둔다.

다른몸들 대표 (iingmod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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