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흔히 폐기물이라고 하면, 가정에서 버리는 생활폐기물을 떠올린다. 그러나 대한민국 전체 폐기물 중에서 생활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9%에 불과하다(2022년 기준). 나머지 91%는 사업장에서 나오는 폐기물, 소위 ‘산업폐기물’이다.

현재 정부 정책은 생활폐기물과 산업폐기물에 적용되는 원칙을 다르게 해 놓았다. 생활폐기물은 ‘발생지 책임의 원칙’이 적용되어서 폐기물이 발생하는 곳에서 처리를 해야 한다. 다른 지역으로 떠넘기지 못하는 것이 원칙인 것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가 수집·운반부터 재활용, 소각, 매립 등의 전체 과정을 책임지고 관리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산업폐기물은 ‘발생지 책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산업폐기물 처리는 대부분 민간업체에게 맡겨져 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 업체가 인·허가를 받으면, 전국의 산업폐기물을 모두 반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산업폐기물은 폐기물 운반차량에 실려서 전국을 이동하고 있다.

이런 사실들에 대해 설명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한다. 생활폐기물보다 산업폐기물이 더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할 텐데, 왜 민간업체들에게 처리를 맡겨놓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산업폐기물을 어디에선가 처리해야 한다면, 가능한 폐기물이 발생한 곳 가까이에서 처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은 정반대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나마 정부가 운영하고 있던 일부 지정폐기물(산업폐기물 중에서도 유해성이 강한 편인 폐기물)매립장 조차도 IMF 경제위기 이후에 민영화를 해 버렸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산업폐기물이 돈이 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모펀드와 대기업들까지 뛰어들기 시작했다. 산업폐기물 처리사업이 인·허가만 받으면 이윤이 보장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것이다. 특히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운영하는 업체는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이 50~60%를 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SK, 태영, 아이에스동서같은 대형 건설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

그래서 환경정의에 반하는 매우 부정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산업폐기물은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경제·사회시스템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데, 그 처리부담을 특정지역에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업폐기물이 별로 발생하지도 않는 농어촌 지역에 산업폐기물처리시설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폐기물 매립이 수백, 수천억원의 이익이 보장되는 이권사업이 되어서 몇몇 업체들만 막대한 이익을 누리는 것은 경제정의에도 반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후관리가 안 되거나, 지역주민들의 건강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에는 국민세금을 투입해서 사후대책을 수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예로, 충북 제천에서 에어돔 붕괴사고가 일어난 매립장을 100억원 가까운 세금을 들여서 복구했는데, 지금도 페놀 등 유해물질이 인근 지하수에서 기준치 이상 검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익은 몇몇 업체들이 누리고, 피해는 지역주민들이 입고, 사후관리는 국민세금으로 하는 것이 기막힌 현실이다.

게다가 생활폐기물처리시설에 대해서는 주민감시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산업폐기물처리시설은 그것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다. 사유지라는 이유로 주민들이 접근도 못하게 한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정치와 행정의 책임이 크다. 정치는 이런 현실에 대해 무관심했고 무지했다. 행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부 사례들을 보면, 정치·행정이 업계와 유착되었다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

아무리 정책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총선이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부정의한 현실에 대해 정당들이 책임있는 입장을 내야 하지 않을까?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산업폐기물에도 발생지 책임의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이 주민들과 시민·환경단체의 요구사항이다. 3월14일에는 지역주민들이 상경집회를 하고, 거대양당 앞으로 가서 정책요구를 할 예정이다. 이런 상식적인 요구에 정당들이 응답하길 바란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haha9601@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