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이 왜 저평가되는지, 저임금을 받는 여성의 삶은 어떤지 구체적으로 살피기 위해 <매일노동뉴스>는 20대부터 60대까지 10명의 여성노동자를 만난 노동사와 생애사를 들여다봤다.

① [70대·60대] 평생 일해도 제대로 인정받은 적 없는 경력
② [50대] 무력한 30년 경력 일용직·최저임금 갈림길에 서다
③ [40대] 양육과 돌봄 회전문에 매인 삶
④ [30대] 경력단절의 시작, 집으로 끌려 들어가는 엄마들
⑤ [20대] 비슷한 현실 다른 선택, 아이를 안 낳거나 조용히 사라지거나
⑥ [종합] 유연한 일자리, 성별 격차 해소할까, 심화할까

▲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이수정(27)씨는 19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특성화고에서 딴 회계 자격증으로 회계사무소에 취직했다. 대표인 회계사와 수정씨를 포함 직원이 4명인 작은 사업장이었다. 최저임금을 받았지만 첫 직장에서 잘해보겠다는 열의가 컸다. 실무의 벽은 높았다. 조언해 줄 여유가 있는 선배는 없었다. 1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대표는 ‘일을 잘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라’고 말했다. 그날로 쫓겨났다.

자신의 실력을 탓하다가도 우연히 들었던 대표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남자를 뽑아야 해. 문 앞에 남자가 앉아있으면 듬직하잖아.”(회계사무소 문 앞은 주로 막내 사원 자리다.)

경력은 짧았고, 이직은 잦았다. 정규직이지만 불안정했다. 얼마 전에는 인력공급업체 경영지원팀으로 1년6개월가량 일하다 해고됐다.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었다는 이유였다. 부동산임대업체 경영지원팀에서도 1년4개월간 일하다 임금이 밀리면서 제 발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와 실업수당으로 빈틈을 채웠다.

회계업계에서 회계사 빼곤 대부분 여성이다. “온갖 잡무를 처리할 사람이 필요한 거죠.” 수정씨는 30분 일찍 출근해 사무실을 청소했고,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통을 비웠다. 대표의 손님이 오면 제일 먼저 움직였다. 사무실의 무급 돌봄노동자였다. 성별과 학력 차별이 중첩되면서 불평등은 쉽게 용인됐다.

학교에서부터 여성의 일은 정해져 있었다. 국가의 기술인력 육성이 목표인 특성화고는 성차별적 노동시장의 축소판이었다. 공고는 남성화, 상고는 여성화된 것처럼 말이다. 보조적 역할로 길러진 여성노동자는 퇴사와 입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이 생애 중심에 오면서 수정씨는 ‘여자라고’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일터에 갈 수 없었다. ‘K-장녀’로 집안의 가장인 그의 구직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남초’ 일터에서 ‘여초’ 일터로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인 김현지(29)씨는 요리사였다. 전문대 조리학과 졸업도 하기 전, 스물한 살 제주 유명 호텔에 취직했다. 현실은 지옥이었다. 새벽 4시30분 출근하면 오후 4시가 돼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몇십 리터 육수를 나르고 파인애플 세 박스를 썰었다. 손목이 망가졌다. 쉬는 날엔 한 번 맞는데 10만원인 통증 완화 주사를 달고 살았다. 인천 호텔로 이직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그렇게 8년 경력을 떠나보냈다. 장시간 고강도 육체노동에도 마지막 연봉은 2천6백만원에 불과했다.

남성 중심 업무환경도 한몫했다. 조리업계에서 여성은 10%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절반은 제과제빵업이다. 군대 문화가 주방을 지배했다. 임신한 여성은 업무에 차질을 준다며 그만두게 했다.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는 탓에 아이를 낳고 돌보며 일하기가 어려웠다. “여성들 경력단절이 심했죠. 사수로 만난 20년차 40대 여자 선배는 결혼을 포기했다고 했어요. 경력을 쌓은 선배가 멋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짠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앉아서 하는 일이 하고 싶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현지씨는 콜센터 업무를 선택했다. 이왕이면 공공기관 일을 해보자고 생각해 건강보험공단에 입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급업체 소속인 걸 몰랐다.

진입장벽은 낮았지만 고숙련이 필요한 업무였다. 자격·부과·징수·보험급여·장기요양·건강검진 등 건강보험 관련 1천600여개 업무를 익혀야 했다. 4주간 교육받으며 매주 시험을 봤다. 점수 미달이면 재시험을 쳤다. 함께 입사한 동기 3명 중 2명이 교육기간 도망갔다. 최종시험 관문을 뚫고 마주한 실무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를 고객을 응대하기 위해 자판기가 돼야 했다. 마지막 남은 동기마저 입사 일주일 만에 때려치웠다.

건강보험공단은 2년째 정규직 전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2019년 2월27일 입사자부터 직업기초능력평가(NCS)로 공개채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무자격 상담사인가요. 왜 여성들의 경력은 쉽게 무시되나요.” 도급업체가 2년마다 바뀌면 경력은 ‘리셋(reset)’ 된다. 10년 이상 일한 선배와 현지씨의 임금은 10만원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현지씨 월급은 210만원 남짓. 생활비가 부족한 그는 주말 카페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시급 1만원씩 7시간 이틀 일한다. 주거비·교통비·통신비 등 고정비용에 밥값·생활비까지 하면 저축할 여유가 없다. “미래를 꿈꾸고 싶어서 쉬지 않고 일해요.”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여성폭력으로 시작된 빈곤 굴레

세림(25)씨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집을 나왔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가족들은 세림씨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자 금전까지 요구했다. 가족 부양도 꼼짝없이 그에게 떠넘겨질 것 같았다. 1인 가구가 되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현행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은 세림씨처럼 근로능력이 있는 경우 일을 해야만 생계급여를 준다. 90만~130만원 사이 소득을 올려야 45만원의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다. 수입이 없으면 수급 자격을 잃는다. “아파서 일을 못 하게 될까 항상 불안했어요.”

학업과 일을 병행하느라 24시간이 모자랐다. 하필 집을 나올 때 일하던 레스토랑 서빙 아르바이트에서 해고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었다. 당장 할 수 있고, 안 잘릴 일을 찾았다. 교대근무인 편의점에서 평일 3일 5시간씩, 주말 이틀 8시간씩 일했다.

내 시간을 갖고 싶었다. 평일 아르바이트를 주말로 몰았다. “미친 사람처럼 일했죠”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고, 집에서 쪽잠을 잔 뒤, 일요일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 일했다. 잠깐 눈을 붙였다 오전 10시부터 월요일 오전 7시까지 같은 사이클을 반복했다. 그렇게 1년6개월을 일했다. 3일간 뜬 눈으로 지내며 시력이 급격히 저하됐고, 허리 통증이 심해져 병원에서 주사를 달고 살았다.

그의 사정을 알게 된 교수가 연구보조 업무를 주면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 있었다. “친구도 만나고 글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했어요. 그땐 항상 업(UP)돼 있었어요. 내 삶을 산다는 감각을 처음 느꼈죠. 보통의 삶은 이렇구나, 약간 억울한 마음도 들었죠.”

지금은 하루 7시간씩 주 5일 레스토랑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 금요일엔 편의점에서 야간에 7시간 더 일한다. 그래도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서비스직만은 제발 안 하고 싶었어요. 몸이 축나는 기분이에요. 회계 자격증이라도 따려는데 일하면서 엄두가 안 나요.”

서울에서 4년 대학을 다니지만 절망감이 크다. “평생 최저임금 받으면서 살지 싶어요. 엄청난 스펙을 쌓아서 대기업에 갈 것도 아니고 답이 없어요. 중소기업 사무직으로 일하게 돼도 40대가 지나면 안 받아 주겠죠. 주방에서 만났던 ‘이모들’ 보며 나도 다시 돌아오겠구나 생각해요.”

결혼? 출산? 노동자 생애 방해가 될 뿐…

노동시장 주변부에서 불안정한 노동을 하며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성의 현실은 비슷했다. 그러나 20대 여성들은 앞선 세대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아이를 낳지 않거나, 조용히 사라지거나.

청년여성들의 생애는 노동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결혼도, 출산도 방해물로 생각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20년 발간한 ‘청년세대 생애전망에서의 남녀 차이,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 보고서에서 “청년여성들은 결혼제도가 전 생애 생존의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중심적 생애를 유지하는 것을 절박하게 선택한다”고 진단했다.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급증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청년여성들의 자살생각을 연구한 이소진 연구자는 책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에서 “생애과정의 규범적 이행(취업-결혼)을 전제해 청년여성을 여전히 부차적 노동력으로 간주하는 남성중심적 노동시장과 그로 인한 노동불안은 생애 전반에 대한 위험을 확장한다”고 짚었다.

남성이 아니라서 청년에서 배제되고, 결혼·출산·육아 생애주기에 포함되지 않아 여성에서 배제된 청년여성들을 정책의 주체로 호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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