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소희 기자

경기도 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이중언어코치 결혼이주여성 레이(가명)씨는 월급명세서를 받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이중언어코치로 일한 지 12년이나 됐지만 경력에 맞는 월급을 기대할 수 없어서다. 이중언어코치는 다문화가족 자녀가 부모 각각의 모국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레이씨 나라의 모국어와 한국어 2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한국어능력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이렇듯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는 전문직임에도 레이씨가 받는 월급은 207만원 선이다. 센터 내 유일한 모국어 구사자로 통번역업무도 겸업하고 있지만 임금은 제자리다. 특히 근속연수에 따라 호봉을 적용받는 선주민 행정직원과 달리 결혼이주여성이 주로 맡는 통번역사와 이중언어코치는 호봉을 적용받지 못하는 현실에도 분노한다.

“12년을 일했는데 승진은커녕 급여조차 그대로라니. 생각할수록 화가 나요. 제 일의 가치가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에 묻고 싶습니다.”

116주년 여성의 날을 맞아 레이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10명 중 7명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

가족센터·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10명 중 2명만이 호봉제를 적용받고 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이주여성 중 소수가 경력이 반영된 임금을 받는 반면 센터 내 선주민은 호봉에 따라 임금을 받고 있어 차별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는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주여성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부는 지난달 8일부터 29일까지 233명의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024년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가족사업안내’에 따르면 통번역사는 400명·이중언어코치는 210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38%가 참여한 조사다. 가족사업안내는 가족센터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운영의 기준이 되는 가이드라인이다.

응답자의 평균 경력은 6년7개월이었다. 60.5%가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이었고 계약직은 39.5%였다. 일터 만족도는 낮았다. 응답자 중 167명(71.7%)이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답을 골랐다.

임금에 대한 불만족이 컸다. 응답자의 90.2%가 매우 만족하지 못한다 혹은 만족하지 못한다는 선택지를 골랐다. 10명 중 9명이 임금이 적다고 판단한 것이다.

임금을 분석해보니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229명의 유효응답자의 임금의 평균값을 구해보니 209만1천438원이었다. 월 209시간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올해 최저임금은 206만740원이다. 6년 이상의 평균 경력과 경력이 반영되지 않는 평균임금이 조사된 것이다.

52.8% 가족수당 못 받아
… 시간외 근무수당도 차별

이들이 저임금에 머무르는 이유는 각종 수당과 호봉제에서 예외가 되기 때문이다. 전체 응답자 중 42명(18%)만이 가족사업안내에 명시된 호봉 기준표에 따라 임금을 받고 있었다. 명절휴가비를 받지 못하는 이는 19.3%, 가족수당에서 배제된 이는 52.8%나 됐다. 시간외 근무수당의 경우 10.3%(24명)는 적게 받고 있다고 답했고 46.8%(109명)는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다. 여성가족부는 봉급 기준과 수당기준은 개별 기관과 지자체 예산에 따라 달리 지급될 수 있다고 안내한다. 하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주여성들이 각종 수당과 호봉에서 제외될 때 선주민 직원들은 호봉과 함께 명절휴가비·가족수당·시간 외 근무수당을 받고 있다는 것이 지부 설명이다.

가족사업안내에 따르면 국비가 지원되는 가족센터·건강가족지원센터는 210곳이다. 서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30% 예산을 지원하고, 지역의 경우 50%가 지방비다. 또한 각 센터마다 이들의 호봉 적용 여부는 센터를 위탁하는 기관의 판단이다. 예산 지원의 정도와 기관별 편차로 이러한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임금 지급 기준이 되는 가족사업안내가 의무규정이 아닌 가이드라인에 그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이다. 센터에 대한 위탁을 민간기관에 맡길 때 결혼이주여성 등에 대해 호봉과 수당을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지난해 센터 상담통계에 따르면 이주여성에 대한 성폭력 상담은 733건으로 지난해에 비해 200건이 증가했다”며 “여성 이주노동자는 노동현장에서 심각한 인권침해와 차별을 경험하는 당사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은 차별의 피해자인 동시에 같은 이주여성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주체”라며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승진에서 배제되며 임금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이주여성의 차별없는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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