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절기를 가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난 우수(雨水)에는 ‘눈이 녹아 비로 내린다’는 이름의 뜻과 같이, 늦은 밤까지 비가 내려왔습니다. 지구가 이렇게나 아픈데, 절기에 따라 비가 내려오고, 바람에 온갖 내음이 섞여들고 볕이 달라지는 것이 서럽고도 고마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스물네 개 중 세 번째 절기, 경칩(驚蟄)입니다. 이름을 풀어보면 ‘잠 들었던 벌레들이 놀라 깨어난다’는 뜻인 듯합니다. 그 이름 뜻보다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폴짝, 몸을 움직이고 소리 높여 봄을 알리는 때로 오늘을 기억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경칩에 봄을 알리는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는 일이 어렵다고 합니다. 올해 1월은 기상을 관측하기 시작한 이후 두 번째로 따뜻했습니다. 지난 입춘(立春), 서울의 한낮 최고 기온은 12.2도에 이르러 관측 이래 가장 따뜻했던 입춘으로 기록됐습니다. 입춘 무렵, 영상 10도 이상의 기온을 경험한 것은 51년 만의 일이라 합니다. 1월과 2월, 기록적인 고온으로 개구리와 벌레들이 이르게 깨어났다가, 다시 찾아온 한파로 얼어 죽는 참극이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봄을 알리는 꽃들도 이르게 피어났지요. 1963년 시작한 진해군항제는 국내에서 가장 큰 벚꽃축제입니다. 올해 개막일은 이르게 찾아오는 벚꽃 개화 시기에 따라, 첫 해보다 14일이나 당겨졌습니다. 제주에서는 평년보다 32일 먼저 매화가 피어나, 46일 먼저 만개했습니다. 봄꽃의 자라남을 기록하기 시작한 1940년 이후 가장 빠른 기록이라 합니다.

내려오는 봄비, 이르게 피어나 흐드러진 꽃잎들 사이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잃은 봄의 문턱에서, 우리는 어떤 낭만보다는 분명한 경고를 ‘감각’합니다. 지난 1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서, 1.52도나 높았습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약속했던 기후재앙 대응 ‘마지노선’인 1.5도를 끝내 넘어선 것입니다. 계절이 저물고 피어나는, 생명이 잠들었다 깨어나는 우리 생태의 시계는 이미 부서져 조각났습니다. 아픈 지구를 살아가는 우리 노동자와 시민들의 일과 삶도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유효하고,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질문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절멸’인가, 세계의 ‘전환’인가라는. 우리 노동자와 시민들의 답은 분명합니다. 이 고장난 세계의 질서를 바꾸는 신속하고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기업과 정부들, 기후악당들은 인간과 우리 생태 모두의 존엄보다 자신들만의 이윤을 앞세워, 오랜 시간 지구를 병들게 했습니다. 여섯 번째 ‘대절멸’을 앞둔 기후위기 시대,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열망마저도 또 다른 이윤 경쟁의 명분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녹색으로 껍데기만 덧칠한 기후정책과 산업전환 정책은 노동자와 시민들의 일과 삶에 대한 책임은 외면하고 비민주적으로 강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우리의 일과 삶을 맡길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아픈 지구와 생태를 치유하는 ‘전환’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고장난 세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갈 주체는 바로, 우리 노동자와 시민입니다. 전환 정책은 그 경로에 따라서 위기의 대응인 동시에 또 다른 위기의 방아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신속하고 정의로운 전환의 길은 바로 우리 스스로만이 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에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이 서 있습니다. 발전소 노동자들은 지역에서 어렵고 위험한 노동조건을 견디며 오랜 시간 우리 삶의 필수재인 전기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해왔습니다. 탈탄소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연이어 문을 닫는 상황에서, 발전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기후악당의 일부가 된 듯한 슬픔과, 일자리를 잃게 되는 위험을 끌어안고 발전소 폐쇄를 지지했습니다. 다만 발전소들이 문을 닫더라도 노동자와 시민들, “우리의 삶까지 폐쇄될 수는 없다”며 모두의 일과 삶을 지키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석탄화력발전소만이 아니라, 자동차·철강 등 산업 곳곳에서, 지역 곳곳에서, 반복될 부정의한 전환 정책에 맞서, 우리 서로를 지키는 새로운 길을 함께 걷자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3월30일, 충남 태안에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의 손을 잡아 주세요. 2025년 태안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두 기가 폐쇄됩니다.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들도 연이어 문을 닫습니다. 발전소 폐쇄로 발전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지역주민들의 생존권이 위태롭지만, 정부와 지자체, 발전공기업은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걸음이 새로운 길이 됩니다. 함께 손을 잡고, 함께 행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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