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기후위기가 갈수록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지만 위기해법인 온실가스 감축은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최근 발표 결과다. 대폭 줄어도 시원찮을 배출량이 지금도 늘고 있다. 배출량이 늘고 있으니 온난화가 계속 진행될 것은 뻔하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 역시 지난해에 사상 최고치인 1.48도를 기록했고, 최근 1년 동안의 평균기온이 이미 1.5도 이상 올랐다는 보고도 있다. 1.5도 상승은 인류에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유엔이 정한 일종의 안전선이다. 한 번 경계선을 넘었다고 목표가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목표달성을 위한 기회의 창이 사실상 닫혀 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구체적으로 탄소배출이 어떻게 늘었는지 살펴보자. 지난해 글로벌 에너지 관련 배출량은 374억톤이었는데, 이는 전년보다 1.1% 늘어난 수치다. 배출량 증가분의 65% 이상이 석탄에서 나왔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조기에 폐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확인시켜 준다.

희망적인 조짐들도 보인다.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연간 평균 배출량 증가율이 0.5%였는데, 이는 1929년 대공황 이후 가장 느린 증가속도였다. 증가속도를 둔화시킨 것은 최근 대폭 늘어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었다. 지난해 태양광은 전년 대비 거의 두 배가 늘었고, 풍력도 60%가 증가했다(반면 핵발전은 30% 줄었다). 더욱이 전기차와 히트펌프 보급이 늘어난 것까지 감안할 때, 만약 이들 증가가 아니었다면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은 3배나 더 많았을 것이라는 게 IEA의 지적이다. 하지만 어쨌든 탄소배출 총량은 여전히 줄지 않고 늘었으니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더 빨리 늘려야 하고, 석탄화력발전 폐쇄 속도도 더 빨리 줄여야 했다. 물론 에너지 총수요 역시 관리를 하면서 말이다.

이번 IEA보고서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중국을 포함해서 세계적으로는 배출량이 늘었지만, 선진국가들에서 탄소배출량이 4.5% 감소한 대목이다. 원래 지구 평균 온도 1.5도 이내 상승목표를 맞추려면 선진국들은 탄소배출량을 최소 7% 이상 이상 감소시켜야 하지만, 경제위기도 아닌데 4.5% 감소를 실현한 것은 주목할 성과다. 1973년 수준으로 배출량이 되돌아간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을까. 탄소배출량 감소의 3분의 2는 전력생산 분야였다. 특히 재생에너지 비중이 34%까지 올라간 반면, 석탄화력발전은 17%로 급락한 것이 큰 영향을 줬다. 미국을 중심으로 천연가스 비중이 31%가 되었던 점도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했다.

물론 탄소배출량 감소에는 과거에 비해 낮아진 경제성장률도 한몫했다. 아무리 에너지 전환을 하더라도 경제성장으로 인한 에너지 수요 자체가 크게 팽창하면 탄소배출량이 늘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유럽연합을 보면 두드러진다. 유럽연합의 탄소배출량이 무려 9% 감소한 것에는 석탄은 물론 천연가스까지 (그리고 핵발전까지) 화석연료 모두를 감소시킬 정도로 재생에너지 확대가 큰 영향을 줬다. 아울러 경제성장률 0.7%라는 낮은 경제팽창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IEA는 플러스 성장에도 높은 감축률을 보였다고 평가했지만.

종합해 보자.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이 위험 경계선인 1.5도에 사실상 접근했는데도, 세계는 아직 에너지 부문에서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최근까지 오히려 늘어나고 있고 언제 정점에 오를지도 예측이 안 되고 있다. 이 대목만 보면 상황은 매우 비관적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심각한 경제위기 없이도 상당한 배출량 감소에 성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석탄화력발전 축소와 대폭적인 재생에너지의 확대 덕분이었다. 유럽을 보면 제로에 가까운 낮은 경제성장률도 우호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선진국 일원인 한국이다. 선진국 평균이 재생에너지 34% 석탄화력발전 17%일 때, 한국은 재생에너지는 겨우 10%를 넘었고, 석탄화력발전은 여전히 30%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기후 후진국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가야 할 길이 멀다.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bkkim21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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