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었다. 김민수(가명·42)씨는 이주노동자 36명이 탄 통근버스를 운전하고 있었다. 갑자기 자동차 3대가 버스를 에워쌌다. 미등록 체류자 단속에 나선 출입국사무소 공무원들이었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버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김씨는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았다. 150미터가량을 가 이주노동자들을 내려 줬다. 도주는 2~3분 만에 실패로 끝났다. 김씨는 물론 이주노동자 대다수가 붙잡혔다.

대가는 가혹했다. 김씨는 1심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그는 어떤 마음으로 가속 페달을 밟았을까.

출근버스 막은 단속반 … “과장님, 도망가세요”

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1부(재판장 임동한)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씨에게 지난해 12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대구의 한 산업단지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서 총괄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40명 가까운 직원 중 4명을 제외하고 모두 이주노동자라, 이들을 관리하는 게 주 업무다. 중학생·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그는 수당 50만원에 통근버스 운행도 자처했다.

판결문과 진술을 종합하면 사건 발생일은 지난해 8월25일 오전 7시25분경이다. 길게는 7~8년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과장님 도망가세요”라며 애원하자 김씨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액셀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 대구출입국사무소 차량 3대를 들이받았고, 공무원 11명에게 전치 2~3주 상해를 입혔다.

재판부는 “단속에 놀라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들의 상해 정도가 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면서도, “다수의 공무원에게 상해를 입히고 단속 차량들을 손괴해 불법체류 단속업무에 중대한 장애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징역 3년은 양형 범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사건 발생 이틀 뒤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현재는 대구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사건 당일은 금요일이었는데, 주말만 지나면 개학이라 아이들과 놀러가자고 약속하고 출근했는데 6개월 넘게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가족 위해 멀리서 일하는 모습, 나 같아”

김씨는 이주노동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김씨 가족들과 변호인을 통해 들은 김씨의 심경이다. 김씨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나이에 고향 창녕을 떠나 대구 산업단지에 취업했다.

김씨측 손나희 변호사(법률사무소 나인)는 “어려서부터 마음 기댈 곳 없이 살아 온 세월이 길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에게 마음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씨 동생 김민주(가명)씨는 “오빠가 어려서부터 엄마와 저를 위해 희생을 많이 했다. 이주노동자들도 가족들을 위해 멀리까지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지 않냐”고 말했다. 김씨 배우자 이미정(가명)씨는 “평소 이주노동자들을 잘 챙겼다. 여성 직원이 한국에서 낳은 아이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 옷가지를 챙겨 주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2016년 사업장에서 같이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붙잡혀 가는 모습을 목격한 것도 계기가 됐다. 수갑을 찬 채 “도와달라”고 외치던 동료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상황은 김씨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인도주의적 선처 필요해”

법무부의 토끼몰이식 단속이 낳은 비극이란 지적이 나온다. 고명숙 이주와가치 대표는 “법무부가 시장·예배당 등 일상적인 공간으로 단속 범위를 넓히면서 이주노동자들의 공포감이 대단히 커졌다”며 “최근 투입 대비 효과를 높이겠다며 출퇴근 버스를 막고 무작위로 단속하기도 한다. 토끼몰이식 단속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속으로 미등록 체류자가 줄어들진 않는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다. 임금체불과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사업장 변경이 제한된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을 제도권 밖으로 내몰고 있다는 얘기다. 고 대표는 “엄청난 범죄 현장을 급습하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비인간적인 단속을 그만하고 구조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의 항소심 재판은 6일 시작한다. 김씨 사연을 알게 된 시민들의 탄원서가 빗발치고 있다. 이날 기준 4천장 가까이 모였으며, 30여곳 단체에서도 성명서를 발표했다. 김씨는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손 변호사는 “실형을 선고받고 절망에 빠져 잠만 잤다고 했다”며 “평생 누군가의 도움은 못 받고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민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는 것에 크게 감동했다고 했다. 동료 수감자들이 이제야 좀 웃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손 변호사는 “김씨가 범죄를 저질렀지만 의도를 살펴봐 주셨으면 좋겠다”며 “인도주의적 방향으로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변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탄원서 참여하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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