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 26일, 안전운임제를 재시행하는 내용의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법 개정안이 오스트레일리아 의회를 통과했다. “노동법의 허점을 메꾸는 법(Closing Loopholes Act)”이라는 부제를 단 공정노동법 개정안은 임시직, 용역, 플랫폼 노동자 등 기존 노동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 보호를 확대하고, 차별·임금체불로부터의 보호를 강화하며, 노조활동과 초기업적 교섭을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2016년 보수정부가 폐지한 전국적 안전운임제를 재도입하는 개정안은 2022년 말로 안전운임제가 일몰된 우리와 좋은 대조를 보인다.

개정법에 따라 호주 공정노동위원회(Fair Work Commission)는 도로운송업에서의 최저노동기준을 정할 권한을 가진다. 즉 도로운송업의 노사를 대표하는 단체나 고용노동부의 신청에 따라, 또는 위원회의 직권으로 도로운송업의 보수·노동시간 등에 관한 최저기준을 정하게 된다. 공정노동위는 이 최저기준을 정할 때 도로운송업 자문그룹의 자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그룹은 도로운송업 노사 단체의 이해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공정노동위는 도로운송업의 최저기준을 정할 뿐 아니라, 도로운송업의 공급 사슬(supply chain)로 연결돼 있는 사업자들에게 최저기준과 관련된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화주로부터 말단의 운송노동자까지 다단계 위수탁이 이뤄지는 구조에서 화주나 원청업체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법에는 도로운송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전체 산업의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디지털 노무제공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 사람들은 도급계약이든 위탁계약이든 계약의 유형에 상관없이 노동법적 보호를 확대, 적용받게 된다. 다만 일정 기준 이상의 소득을 얻는 사람들은 적용제외된다. 플랫폼 노동자의 최저노동기준도 공정노동위원회가 결정 권한을 갖는다. 여기에는 보수, 노동시간, 실비변상, 노무제공 이력 정보, 집단적 협의 또는 노조활동에 관한 권리와 기준이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플랫폼의 일방적 계정 정지나 비활성화 등에 관한 분쟁을 공정노동위가 다룰 수 있게 된다. 위원회가 부당한 계정 정지로 판정하면 계정 재활성화와 금전보상 명령 등을 내릴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번 노동법 개정은 지난 십수 년간 노조운동의 끈질긴 투쟁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운수노조(TWU)는 2012년 전국적 안전운임법이 도입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2016년 안전운임법이 폐지된 이후에도 안전운임제 재시행과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분투해 왔다. 입법을 위한 캠페인뿐만 아니라 도로운송업에서 대형 화주 및 운송업체와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조직과 투쟁도 병행해 왔다.

오스트레일리아운수노조, 우리의 공공운수노조가 가맹돼 있는 국제운수노련(ITF)도 안전운임제의 국제적 확산을 위한 글로벌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다. 오스트레일리아운수노조와 국제운수노련은 안전운임제 유지·확대를 위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2022년 파업 투쟁에도 적극적 지지와 연대를 보냈다.

윤석열 정부는 “안전운임제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제도”라고 주장하면서 화물연대의 파업을 탄압했고, 안전운임제를 일몰·폐지시켰다. 당시 정부는 화물운송 노동자를 보호하고 표준운임제를 시행하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현재까지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안전운임제가 일몰되고 지난 1년여간 화물연대가 우려했던 대로 운임 삭감, 화물운송 노동자의 사고 증가, 노사합의의 파기가 현장에 만연히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실효성 없는 표준운임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계획만 밝히고 있다. 진보정당을 비롯한 야당들 역시 화물연대 파업 당시 약속했던 안전운임제 유지·확대를 위한 실제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의 최저노동조건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는 정부와 국회의 립서비스에 머물러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최근 노동법 개정을 보면서 노동운동과 노동정치의 할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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