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노동조합의 채용 상근자 인력난은 이미 심각하다. 무엇보다 사람 자체를 찾기 어렵고, 두 번째로는 새로 진입한 상근자와 원래부터 그 조직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던 활동가들 간 갈등도 만만치 않다.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운동은 노조나 단체의 인재 수혈 구실을 했다. 어느 정도 규모를 유지하고 있던 학생운동 그룹들은 매년 10여 명씩 젊은 활동가들을 배출했고, 이들은 겸손한 자세로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운동이 필요로 하는 공간에 진출했다. 그들은 노조 혹은 노조 없는 사업장에 들어가 내부의 조직 갈등을 대면하고, 인내심을 갖고 역량을 쏟아부었다. 자신들을 보낸 조직이라고 해서 알뜰살뜰 챙겨줄 역량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때로는 ‘방치됐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누군가는 성취를 거뒀고, 누군가는 소리 없이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이후 소수 활동가들의 이런 경험을 소련 붕괴 이전 시기 학출들의 현장 진출과 비교하며 무의식적으로 “라떼는”을 시전하려 한다면 사양하고 싶다. 80년대 학출 활동가들이 또래 집단에서 겪은 각오와 또래 집단에서 마이너리티로 남은 2000년대 이후의 청년 활동가들이 겪은 감정은 같지 않다. 양자에게는 각자의 고뇌와 경험이 있고, 이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방식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운동은 달라진 주체적 조건의 젊은 활동가가 요동치는 감정을 극복하고 단단한 활동가로 단련되는 경로를 알지 못했다. 세대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로 요동치고 고뇌했을 뿐이다. 사회운동은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나 이데올로기, 문화, 개개인의 정서를 자기 조직 안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번역’할 것인지에 대해 준비되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여러 조직들에서 발생한 무수히 많은 내부 갈등들을 떠올려보라.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학생운동을 통한 활동가 재생산 메커니즘은 무너졌고, 일부 남아있다고 해도 조직문화 측면에서 과거와는 다르다. 그들이 또래 집단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방식 역시 달라졌다. 이는 저발전이나 미숙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이다. 그 달라진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이제 노조나 단체들은 더 이상 학생운동 출신의 젊은 활동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나마 그 비슷한 경험을 한 많은 이들이 사회운동에 대한 전망이 없다고 단정하고 로스쿨이나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이따금 나타나도 전체 운동이 필요로 하는 수량에 미치지 못한다. 민주노총이 ‘신규 청년활동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산별노조들이 다양한 청년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경로를 통해 청년들을 모으고, 상근활동가 진입의 새로운 경로를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렇게 젊은 활동가가 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조직문화를 그대로 둔 채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젊은 활동가들을 대한다면 문제는 전혀 해결될 수 없다. 선배 활동가들에게는 운동의 역사와 논의구조, 어떤 결정을 했을 때 우려되는 점과 중장기적 지향, 노동조합운동의 목표와 비전 등에 대해 A부터 Z까지 안내해야 할 책임이 있다.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지 않고, 닥친 일들을 처리하는 것만 논의한다면 어느 누가 자신의 헌신과 고생이 어떤 지향과 연결되는지 이해하겠는가.

최근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의 대표나 원로들이 조직 내에서 아무 소통도 없이 독단적으로 위성정당 참여를 독려하거나 거간꾼 노릇을 해 논란이 일었다. 해당 단체들 내에서 젊은 활동가들이 이견을 표출하며 대표나 운영위원장의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활동에 항의했지만, 이들은 적당히 뭉개며 본체만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은 비단 기업들의 경영전략이나 정부 정책에만 있지 않다. 사회운동의 분절과 노동자운동의 동맥경화도 유발했다. 운동 곳곳이 분절되어 있다 보니 구심도 사라지고 가슴 설레게 하는 꿈도 희미해진 느낌이다. 이런 위기를 넘어설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이 서로 연결하고,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재생산에 총력을 가하는 것뿐이다. 그와는 다르게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소통하지 않는다면 운동을 파괴할 뿐이다.

다음달 23일,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 모일 400여명의 활동가들은 사회운동의 재구성과 새로운 연합질서의 구축에 대해 논의하고 결의하고, 체제전환운동연합(가칭) 준비위원회를 발족할 예정이다. 이 여정이 운동의 단절을 극복할 새로운 사건이 되길 소망한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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