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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1년그들은 아직도 꿈속에서 라인을 탄다

대우차 정리해고 1년, "그러나 복직의 꿈을 버릴 수 없다"


"아직도 꿈을 자주 꿉니다.
꿈속에서 작업복을 입으려는데 아무리 해도 입어지질 않아요"

꼭 1년 전이다. 집집마다 날라든 해고통지서와 공장 주변에 새까많게 몰려드는 전경들. 그리고 파업과 공권력투입. 그렇게 공장에서 밀려난 후 정확히 1년이 지났다. 그러나 대우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은 꿈속에서도 이루지 못한 복직을 위해 아직도 부평 대우자동차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2월16일 대우자동차에서 사상최대인 1,750명 정리해고가 단행되고 정리해고자들의 지난한 복직투쟁이 이어졌다. 화염병이 등장할 만큼 격렬했던 시위와 '부평은 계엄상황'이라 할만치 살벌했던 진압이 잦아들고, 노조가 직무대행을 세우고 회사와 교섭도 재개됐으나 이들 정리해고자 문제에 대해서는 회사도 GM도 대답이 없다. 정리해고자 문제가 난항을 겪으면서 단협개정 논의도 답보상태로 빠져들었다.

정리해고자들은 아예 12월12일부터 공장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수백여명씩 집회에 참석하던 정리해고자들 중 이제 농성에 참여하는 정리해고자들은 200여명 남짓. 그래도 그들은 농성장을 떠나지 않고 복직의 꿈을 지켜가고 있다.

■ "아이들의 어깨에 힘이 빠져도 버릴 수 없는 것"
"생활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노가다도 뛰고 붕어빵 장사도 하며 간신히 버텨가고 있죠."
부인이 보험설계사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엔진구동부 대의원 강씨의 상황은 그런 대로 낫다. 퇴직금도 바닥나고 지난 10월 실업급여마저 끝나자 엔진구동부 정씨의 경우는 부인과 함께 붕어빵 장사를 했다. 그러나 부인의 건강이 안 좋아져 두달만에 붕어빵 장사마저 접어야 했다. 다행히 타일 붙이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 지난 설 연휴 전에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공사장에서 '3일간 일을 한 돈으로' 설을 쇨 수 있었다.

15년을 근속하며 하루같이 일하다 정리해고 된 프레스부의 김씨는 부인이 동네의 조그만 공장에 나가 받아오는 60여만원의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다. "해고된지 1년 되가면서 생활에 대한 압박감이 심해요. 복직만 기다리며 살고 있죠. 떠난 사람들도 더 싸우고 싶지만 생활이 너무 힘들어 떠난 경우가 많아요." 그는 부인에게 돈타기가 미안해 농성장까지 무작정 걸어서 출근(?) 하는 일이 태반이다. 담담하게 잇는 김씨의 말. "다른 동지들도 다 그래요."

대부분 부인들이 파출부나 인근공장에 다니면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퇴직금도 떨어지고 집도 전세로 줄여갔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여력이 있는 조합원들은 복직투쟁 간간이 건설잡부로 나갔다. 거기서 만나는 정리해고자들은 반가움보다는 서글픔이다.

정리해고의 고통은 아이들이라고 예외가 없다. 집에 있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고 눈에 띠게 어깨에서 힘이 빠져 있다. 길거리에서 대우자동차를 봐도 이제는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다. 학교 준비물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쭈뼛거리는 모습이 부모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김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에게 "아빠 성당가지 마. 얼른 다른 회사 가. 대우자동차 생각하지 말고 뿌리치고 나와"라는 말을 듣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아리다.

대우조선시절부터 20년을 대우마크를 가슴에 달아 온 노조 상무위원 최씨. 한번은 초등학교 다니는 둘째의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선생님께 '아빠가 대우자동차에서 정리해고 돼 집에 돈이 없어요. 내가 매일 청소하고 급식비 안내면 안돼요?'라고 이야기했다며 급식비를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다. 최씨의 부인이 파출부 나가 생활비를 충당하는 상황에서 아버지인 최씨는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 어떻게 이룬 꿈인데……
정씨는 대우차 들어오기 전에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했다.
집안에 아무리 바쁜 일 있어도 회사 일이면 아무소리 없이 잔업이든 특근이든 다해왔다.
그렇게 1년 반을 고생해 대우차에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5년반만에 정리해고로 다시 날라 갔다.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 들어와서도 그때 하청시절 생각하며 열심히 했는데…."

더구나 정씨의 3자녀 중 올해 5살 된 막내아들은 일부 장기가 제 위치에 있지 못하는 선천성 질환을 앓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비 800만원은 처가에서 마련해 줬다. 그러나 아직 두 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 하고 그 중 한번은 올해 6월에 해야 한다. "당장은 안돼도 올해 안에만 어떻게든 복직이 되면 버틸 수 있겠는데…" 정씨는 말끝을 흐리다 한숨으로 내뱉는다.

산재를 당했던 환자들도 정리해고의 악몽을 지고 산다. 96년 산재를 당해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조립2부의 이씨는 회사의 압력이 부담돼 치료를 제대로 종결하지 못하고 다시 일을 했다고 한다. 같은 부서의 신씨도 휴업기간이었던 2000년 12월 건설잡부일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과장이 (정리해고) 걱정 말고 치료하고 있으라고 했는데…" 신씨는 병상에서 해고통지서를 받아야 했다. 한 조합원은 산재로 손가락을 잃었으나 정리해고되기 직전 치료가 종결됐다.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 산재치료를 종결한 해고자들 7명은 '치료종결'이 정리해고를 부른 겪이 됐다. 대우차에서 산재로 장해자가 되고 정리해고까지 된 이들은 더 억울하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노조나 정리해고자들이 벌이는 시위와 별도로 매일 집회를 갖고 있는 이유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부부싸움도 잦다. 그러나 같이 맞대응 할 수는 없다. "예전에는 같이 목소리를 높일 일도 이제는 참는 것밖에 도리가 없어요. 그렇게라도 해 줘야죠."

■ "억울해서 포기할 수 없는 꿈"
엔진구동부의 박씨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다. 그러나 결혼은 복직 이후로 미뤄놨다.
양가 어른들과 여자친구의 걱정에 미안함이 들기도 하지만 젊음을 바치고 미래를 설계한 곳이기에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는 없다. "솔직히 언제까지 갈지 자신은 없어요. 뭐하러 아직까지 개기고 있냐, 그만 다른 곳 알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러나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정리해고 기준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서', '자존심이 상해서', '동지들을 배신할 수 없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다.

이런 억울함이 가슴에 묻혀 꿈이 된다. 엔진구동부 김씨는 꿈속에서 지게차를 몬다. 일이 끝나고는 동료들하고 소주도 한잔 걸친다. 조립2부의 신씨도 꿈속에서 라인을 탄다. 1년동안 못봤지만 조립라인은 선명하다. 동료들과 잡담하고 차를 조립하는 꿈. 해고 이전에는 꿔보지 못한 것들이다.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천경제를 지탱하던 대우차의 부도로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그나마 나오는 구직공고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이후는 여기서 정리해고를 막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도 정리해고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정리해고는 해고자만 망가트리는 게 아니라 가정을 망가트린다. 우리가 지금 막지 못하면 더 심해질 게 분명하다"

공권력에 밀려 난 이후 한번도 공장에 들어가지 못한 정리해고자들은 아직도 개인 사물함을 정리하지 못했다. 사물함 한 켠에 걸려 있던 작업복은 지금쯤 어딘가에 버려졌겠지만 정리해고자들의 가슴 속에는 입사해 처음 받아들고 가슴 설레던 새 작업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이들의 소망은 그 옷이 다 낡아지도록 열심히 일하고 싶은 것밖에 없다.

어두워질수록 더 선명해 지는 작업복의 하얀 줄처럼 주변의 관심이 잦아들수록 선명해지는 복직의 희망을 갖고 그들은 그렇게 공장 앞을 지키고 있다.

김재홍 기자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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