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2022년 12월 “지구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 미래를 전망하고 준비한다”는 목표로 출범한 민간 싱크탱크 선우재가 다음달 8일 1기 노동·기업시민 고위과정을 시작한다. 노조와 기업, 시민사회가 합심해 새로운 연대와 상생의 질서를 만들어 나가고, 지속가능한 일과 노동의 미래를 함께 모색해 보자는 목적이다. 노동학과 노조시민주의 비전을 담은 새로운 교육과정을 표방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선우재 사무실에서 조대엽(64·사진) 선우재 이사장 겸 상임대표를 만났다. 조 상임대표는 2015년 3월부터 2020년 3월까지 6년간 고려대 노동대학원 11~13대 원장을 지냈고, 2019년 12월부터 2022년 5월까지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장정치와 아카데미즘을 연결하다

- 선우재를 출범한 배경이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 정책기획위에서 국정자문을 했던 민간위원이 100여명이다. 교수들이 국가 전 분야에서 자문을 했는데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민간 차원에서 그 정책적 고민을 지속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래 어젠다를 재생산하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뜻을 같이했다.”

선우재는 정책연구 기능과 교육사업 방향성을 가지고 출발했다. 정치·경제·사회·균형발전·지속가능·외교안보 6개 분과 연구회를 두고 있다. 교육사업은 정책적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정치교육과 미래노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노동교육으로 이뤄져 있다.

- 많은 민간 싱크탱크가 있다. 선우재만의 차별성을 꼽는다면.
“선우재에 참여하는 교수들이 국정을 도왔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현장정치와 아카데미즘을 잘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국정 비전이나 방향, 정책적 대안을 발굴·공유하고, 정치인이나 정책당국에 정책자원을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전국적 교수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선우재 풀 안에서 정책을 생산·공유·검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 선우재는 지난해 7월 1차 포럼 노동마루를 통해 노조의 ‘시민성’ 확장이라는 노조시민주의를 제시했다. 한국 노조운동이 오랜 고립·배제로부터 탈출하고 ‘반노동 노동개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노조시민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노동은 위기적 상황이다. 이 기원은 오래됐다. 기술발전에 따른 노동의 위기는 인류사적 보편적 모습이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존중 사회 지향성을 가져 양대 노총 조합원수가 꽤 늘었다. 이것도 일시적 측면이 강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보수화하면서 노동은 점점 더 정부로부터 가혹하게 배제·배척·탄압받는 시대로 돌아왔다. 노동은 보편·조직·정세적으로 3중의 위기에 몰려 있다. 노동은 인간요소의 핵심적 요소다. 노동이 위기이고 배척된다는 것은 인간이 위기이고 인간이 배척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위기 속에서 21세기 노동은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해야 할까. 그 답은 노조시민주의다.”

21세기 노동은 노조시민주의로 귀환해야

- 우리 사회에서 노조시민주의가 진전된 사례로 노동기반 공익재단을 꼽았다.
“기업이 시민이란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다. 기업이 시민적 지향을 갖는데 노동이 그렇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노동이 보편적 시민성을 동반함으로써 보편적 인간요소로 갈 수 있다. 노동의 보편성은 노동의 공공성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이 확장적 방식 또는 시민적 공유의 영역으로 가는 데 제한돼 있다. 기존 노조운동은 계급적 순수성이라는 이름으로 경직된 운동의 방향을 가져왔다. 이런 점을 넘어설 수 있는 노동, 노조시민주의의 진전된 형태가 노동기반 공익재단이다. 노동이 주도하거나 노동과 자본이 공동으로 만드는 것은 노조시민주의가 고도화된 형태로 볼 수 있다.”

노동기반 공익재단으로는 양대 노총 공대위 소속 5개 산별조직이 기금 출연한 공공상생연대기금,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공동 출연한 금융산업공익재단, 사무금융노조와 2금융권 사용자가 출연한 사무금융 우분투재단,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출발해 노조와 단체, 개인 후원으로 구성된 전태일재단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나 노동공제연합 풀빵 같은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난폭한’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 선우재 노동교육원(원장 이문호)이 올해 1기 노동·기업시민 고위과정을 개설하면서, 노동학과 노조시민주의 비전을 담은 새로운 교육실험의 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대학이나 연구원에서 최고지도자과정 같은 이미 개설된 프로그램이 있다. 선우재 고위과정은 뭐가 다른가.
“기존 프로그램보다는 훨씬 더 계획적이고 개방적인 노동비전을 보여주고자 했다. 기존 프로그램과는 또 다른 축으로서 역할을 하려는 것이다. 경영학과 경제학에서도 노동을 다룬다. 하지만 거기에서의 노동은 비용편익적 노동이다. 노동학은 다르다. 가치로서의 노동, 인간주의적 노동이라는 지향성을 가지고 구축해야 기계화·자동화·AI화가 되더라도 인간노동은 어느 정도 합의점을 가지고 존속할 수 있다. 노동경제·노사관계에만 국한하지 않고 노동과 관련한 영역, 인문학 등 거의 모든 학문과 교류·공유하는 연구방식을 만들어 내고 본질을 추구하는 융합학으로서의 노동학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특히 미래학으로서의 노동학이다. 인간 본성으로의 노동요소가 미래에도 지속가능하게 돼야 한다. 지속가능 노동이란 것이 핵심으로 작동한다. 노동학과 노조시민주의가 커리큘럼에서 정교화·체계화됐다.”

1기 노동·기업시민 고위과정은 다음달 8일 개강해서 8월까지 총 6개월간 진행된다. 커리큘럼은 21세기 노동의 전망을 시작으로 인문학적 관점을 통해 일과 노동을 들여다보고, 인구구조·기후위기·포스트 코로나 등 일과 노동세계의 변화, 임금체계·노동시간·노동시장 등 일과 노동세계의 미래, 그리고 노동과 기업이 해야 할 실천과제 등 모두 21강으로 구성돼 있다.

- 일과 노동세계가 급변하고 있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 확대 같은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커리큘럼에서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는 노동영역뿐 아니라 정부로서 평가할 만한 가치를 찾지 못하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이 완전히 없는 정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등 대부분 보수정부는 친기업·반노동·탈규제 요소를 갖춘다. 그렇다고 해도 친기업 정책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윤 정부 같은 난폭한 정책을 펼치는 정부가 들어서니 친기업 지향성을 무모할 정도로 과시적으로 제시한다. 윤 정부처럼 노골적으로 (규제를) 다 풀고 세금 혜택을 주고 노조를 때려잡는 정부는 없다. 이같이 노동의 위기가 고도화되고 있지만 노동이 시민적 연대를 확장하지 못하는 딜레마, 한계를 보인다. 지금은 대학이나 시민사회, 노조 역시 개인화와 탈이념 경향이 작동하고 연대의식이 거의 다 해체된 상태다. 이런 시대적 딜레마를 뚫고 나갈 출구로 노조시민주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노동사회가 시민사회 영역으로의 사회활동, 공익활동, 공익재단 형태로까지 나아갔지만 그런 가치와 의식을 뚜렷하게 네이밍·개념화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와 협력하는 개념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중요하다. 노동운동이 익숙한 관행과 문화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 선우재는 1기 노동·기업시민 고위과정을 통해 ‘노사가 함께 여는 지속가능한 노동(SLGs)의 시대에 대한 통찰을 드리겠다’고 밝혔다. 지속가능노동지표로 구성되는 새로운 교과과정, 지속가능노동보고서 작성이라는 새로운 교육성과를 표방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노동’이란 새로운 개념이 눈에 띈다. 현재 환경·사회·지배구조(Environmental·Social·Governance, ESG) 경영 흐름 속에서 노동중심의 ESG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떤 차이점이 있나.
“ESG 지속가능 목표 속에 노동영역이 있다. 이 (지표) 가운데 노동영역을 늘리느냐 줄이느냐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결국은 기업이 노동에 지출되는 비용을 얼마나 줄이느냐,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적절히 줄이면서 관리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경영에 상응하는 지속가능한 노동의 목표를 중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노동이 다양한 측면에서 목표화·지표화돼서 결국 기업이 인간가치를 존중하고 공존의 가치로 갈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그래야 기업도 지속가능해진다. 현재 교육과정과 병행하면서 지표를 준비하고 있다.”

‘정책정치’가 한국 정치 새 질서 돼야

- 선우재 정치교육원은 지난해 1기 정책정치 전문과정을 출범, 올해 2기를 맞고 있다. 선우재는 ‘정책정치’를 표방하면서 ‘적대와 가학의 이념·진영·지역·파벌정치로 덧칠된 정책 없는 정치를 넘어 정책정치의 패러다임’이 한국 정치의 새 질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책 없는 정치’의 모습은 22대 총선을 앞둔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 신뢰 주는 안정된 정치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지지 않았다. 미국과 같은 선거정당이 아님에도 오로지 선거에서 이기고 표를 얻는 게 목적이 된 것이 우리 정당의 모습이다. 진보·보수정당 모두 다 마찬가지다. 우리 정치는 ‘느와르 정치’ 같다. 암흑가에서처럼 SNS에서 있는 표현, 없는 표현 다 동원해 상대방을 죽이고 스타들이 나타나 평정한다. 이 과정에서 범죄적·폭력적 요소가 다 등장한다. 국민은 그들 말만 들여다본다. 국민은 완벽한 느와르 정치의 관객, 정치인은 주연배우가 돼 움직인다. 언제 국민이 관객이 아니라 주권적 존재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래서 이 교육과정을 통해 길게 보고 정책에 기반한 정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정치인은 정책기반 정치를 해야 한다. 국민과 시민·주민의 삶을 알아야만, 이들의 삶이 국내외 질서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천착해 들어가려면 정책을 알아야 한다.”

- 선우재는 노동·기업시민 고위과정과 정책정치 전문과정 이 외에도 지난해 12월 김태흠 충남도지사 초청 ‘정책과 대화 1차 포럼’을 개최한 데 이어 총선 이후 김동연 경기도지사 초청 2차 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양대 노총 6개 산별과 함께 노동마루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선우재가 앞으로 지향하는 바는.
“우리가 정책을 생산하고 점검하고 공유하는 구조를 튼튼히 하고, 포럼 같은 형식을 통해 국민적 소통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그런 정책적 훈련을 국민과 같이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계속적인 연구와 교육, 네트워크를 넓혀 가고자 한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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