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휴일 없이 코로나19에 대응하다가 희귀질환인 ‘청신경초종’이 발병한 보건소 공무원이 법원에서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만성과로와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저하시켜 발병했다는 취지다. 청신경초종은 전정신경을 둘러싼 세포에서 발병하는 양성종양으로, 청력 상실과 이명·균형 문제 등 증상을 일으킨다. 국내 신규 환자가 1년에 600명 수준인 희귀질환으로 알려졌다.

‘탈수’로 실신했는데도 17일 연속 근무
주치의 “종양 속도 매우 빨라 치료 시급”

2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단독(문중흠 판사)은 수원시 장안구 보건소 공무원 A(47)씨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공무상요양 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인사처가 항소하지 않아 이달 판결이 확정됐다.

A씨는 2020년 1월께부터 그해 5월까지 코로나19 대응팀 상황실에서 소독·방역 업무와 민원 상담 등을 밭았다. 국내에 처음 코로나 확진자가 보고된 무렵이었다. 방역 비상근무로 2월 한 달간 173시간이 넘게 일했다. 4월까지 월평균 148시간 이상 초과근무했다. 하루 5시간 이상 연장근무한 셈이다.

심지어 1월20일부터 2월6일까지 17일 연속으로 휴일 없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A씨는 2월 초 탈수로 실신했다. 하지만 하루 병가 후 비상근무를 계속 이어가야 했다. 3월 중순께는 어지럼증과 이명까지 생겼다. 결국 4월 병가를 하루 내고 출근한 이후 비틀거림 증세가 악화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간 결과 청신경초종 진단을 받았다. 이후 병원진료를 위해 이틀간 병가를 냈다.

A씨 주치의는 “종양 성장 속도가 매우 빨라 치료가 바로 필요하다”는 소견을 냈다. A씨는 인사처에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으나 상병과 공무수행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A씨는 “코로나 관련 전화 응대로 인한 전자파와 유해한 소독제에 지속해 노출됐고, 과로와 스트레스가 병을 자연경과적 속도 이상으로 악화시켰다”며 2020년 11월 소송을 냈다.

법원 “교대근무 못할 정도로 긴급한 상황”
감정의 “과로·스트레스가 상병 악화 영향”

법원은 인사처 판정을 뒤집고 A씨 손을 들어줬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청신경초종의 원인이 됐다고 봤다. 문 판사는 “원고는 5일의 병가 이외에는 휴일 없이 연속해 근무했고, 교대근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긴급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초과근무 시간은 코로나 상황실 비상근무 이후 급격하게 증가해 과중한 육체적 부담뿐만 아니라 상당한 정신적 부담감도 있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청신경초종’과 과로·스트레스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의학적 연구결과가 부족하더라도 면역기능 저하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만성과로와 스트레스가 상병의 진행과 악화에 충분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법원 감정의(직업환경의학과) 소견이 뒷받침됐다. 문 판사는 “원고는 업무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과로가 누적돼 면역력이 저하됐고, 상병을 유발할 정도에 이른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상병이 자연경과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A씨를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청신경초종 크기가 통상적인 진행 속도에 비해 매우 빨리 자랐고, 과로와 스트레스가 인체의 면역기능을 저하시킨다는 점이 의학계 일반 견해라는 점이 인정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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