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재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돌꽃)

사람은 누구나 다른 누군가에게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아이는 부모에게 의존하고, 부부는 서로에게 의존하며, 부모도 노인이 되면 그 자식에게 의존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의존을 최소화한 채 홀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도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왔을 것이고, 나이가 들면 또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할 것이며, 이미 그에게 의존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사람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서로 도우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필연이라면,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노동, 즉 돌봄노동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데 꼭 필요하다. 물과 공기와 같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돌봄노동이다.

그런데 내가 가진 경제적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돌봄노동을 제공받지 못한다거나, 질 낮은 서비스를 받게 된다면 어떨까? 내가 나이를 먹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데 의존할 가족도 하나 없고, 경제적 능력도 없다면. 내가 모셔야 할 부모는 있지만,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도움을 드릴 처지가 안 된다면. 그 삶은 불행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경제적 수준이 낮더라도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정권이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이러한 복지제도의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물론 ‘무상급식 논란’과 같이 정치권 일부에서의 반발도 있었지만 말이다.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변화도 많았지만, 반대로 부족한 점도 있다. 복지에 소요되는 재정은 국민의 부담(장기요양보험·국민연금 등)으로 충당하면서도, 그 운영은 모두 민간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 2021년 자료에 따르면, 전국사회복지시설 중 국공립시설의 비율은 12%에 불과하며, 국공립시설 중 직영으로 운영되는 곳은 10.4%에 불과하다. 결국 민간위탁까지 포함한다면 사회복지시설의 민간 운영비율은 거의 99%에 육박한 현실이다.

그 결과 돌봄노동자들의 처우는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돌봄노동자는 ‘반값 노동자’라는 말이 나온 것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2021년 기존 돌봄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에 60%에 불과하다. 돌봄노동자들의 비정규직 비율은 76.6%로, 대다수의 돌봄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처해 있다. 이렇듯 고용을 민간에 맡겨 두고, 관리·감독에도 소홀하다 보니 돌봄노동자의 임금도 낮고, 고용도 불안한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적고 있다.

돌봄이 기본적 인권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국가에게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면, 돌봄은 결국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경제 수준에 관계 없이 존엄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안정적인 돌봄을 제공받아야만 한다면, 돌봄서비스 제공의 주체는 국가가 돼야 한다. 그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에 대한 처우도 국가가 직접 나서야 비로소 나아질 수 있다. 지금과 같은 99% 민간운영의 현실에서 정당한 돌봄노동의 가치가 인정되기는 요원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복지의 ‘민간 주도 고도화’를 외치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99%를 민간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더 민간 주도를 강화할지 모르겠지만, 복지는 민간주도로 절대 고도화될 수 없다고 본다. 일례로 사회서비스원이 맡고 있던 돌봄시설을 민간으로 돌린다고 그 질이 나아지나.

기업화된 돌봄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지언정, ‘없는 자’에게도 그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을까. 결국 민간 주도 고도화란 국민이 낸 세금(복지예산)까지도 기업의 호주머니로 넣는 정책, 돌봄노동자의 처우는 더욱 불안해지는 정책,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 차이를 강화하는 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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