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쿠팡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운영해 물류센터 노동자의 취업을 방해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인원이 1만6천45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다. 내가 만난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일용직의 경우 출근 신청을 했는데 출근확정 문자가 오지 않으면 ‘혹시 내가 블랙인가?’ ‘어제 일하면서 내가 뭘 잘못했지?’ 하고 생각한다 했다. 관리자들이 블랙리스트를 암시하면서 현장통제에 순응하게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쿠팡은 ‘사업장 내에서 성희롱, 절도, 폭행, 반복적인 사규 위반 등의 행위를 일삼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함께 일하는 수십만 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물론 쿠팡의 블랙리스트에는 이런 사유도 포함돼 있지만 이 경우조차도 쿠팡이 과연 정상적인 징계 절차를 거쳐 등재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정상적 업무수행 불가능이나 지시 불이행, 허위사실 유포 등 회사나 관리자에게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도 등재될 수 있는 사유들이 있다. 여기에 더해 자기개발이나 일과 삶 균형, 육아·가족 돌봄, 학업, 군 입대도 블랙리스트 등재 사유로 명시돼 있다. 블랙리스트 등재 사유가 참으로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 등재 사유를 보면 현장관리자의 판단이 매우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객관적인 절차나 합리적 사유 없이 현장관리자가 블랙리스트 등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뷰한 노동자들에 의하면 회사의 불합리한 조치에 대해 관리자에게 제기하면 지시 불이행이 되고, 회사의 문제를 어딘가에 알리면 허위사실 유포가 된다. 현장노동자들은 잔업을 거부해도, 산재 신청을 해도, 관리자의 일터 괴롭힘을 제보해도 블랙리스트에 오를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불만이 있어도 침묵하고 관리자들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광범위한 블랙리스트는 현장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장치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것이 강력한 통제장치가 되는 이유는 블랙리스트가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매일 채용신청을 해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취업거부’는 곧 해고다. 해고는 노동자들의 생존을 파괴하는 것이자, 노동자들의 권리를 파괴하는 것이므로, 근로기준법에서도 해고의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해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쿠팡은 상시업무에 노동자들을 일용직으로 고용하고, 언제라도 취업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운영함으로써 일방적이고 일상적인 해고를 해왔던 것이다. 현장 관리자의 판단으로 쉽게 해고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강력한 통제의 무기가 된다.

불안정 노동의 시대이다. 채용과 해고가 수시로 발생하고, 채용과 해고의 권한을 기업이 일방적으로 갖고 있을 때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회사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현장은 점차 노동권의 사각지대가 된다. 쿠팡은 6만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물류센터는 일용직과 계약직을 많이 활용하고 있으며, 택배는 직접고용도 일부 있지만, 대다수 택배노동자들은 영업점을 통해 특수고용으로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된 쿠팡의 현장은 냉난방장치도 없는, 산재와 과로사가 만연한 현장이다.

쿠팡의 해고수단은 블랙리스트만이 아니다. 계약직은 갱신 거절로 해고하기도 한다. ‘클렌징’이라는 이름으로 업무구역을 회수해 택배노동자를 해고한다. 영업점과 계약을 해지해서 노동자들을 집단해고하기도 한다. ‘해고’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지만 사실상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노동현장 개선을 가로막는 부당한 노동행위라는 점에서 반드시 처벌돼야 한다. 쿠팡의 블랙리스트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할 것이다. 블랙리스트를 넘어 쿠팡에서 자행되는 다양한 해고에 노동부가 제대로 관리감독 하기를 촉구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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