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상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지난해 11월27일 정부는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올해 E-9(비전문 취업비자) 도입 규모를 16만5천명으로 정했다. 2021년 5만2천명, 2022년 6만9천명, 2023년 12만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9만5천명, 조선업 5천명, 농축산업 1만6천명, 어업 1만명, 건설업 6천명, 서비스업 1만3천명, 탄력배정 2만명을 배정한다. 정부는 외국인력 도입 규모 확대가 내국인이 기피하는 빈 일자리 해소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외국인력 신속 도입과 안정적인 정착 등 체류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인력난 업종의 임금·노동조건 개선은 고려하지 않고 이주노동자를 쓰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이주노동자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처우개선·권리보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해 “권리 없는 이주노동자 양산정책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주노동자에게 문은 넓히고 정착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에서 운영하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를 올해 전부 폐쇄했다. 정부의 이주노동자 지원사업 공백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가득하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주거권, 건강권 등 한 사람의 생애주기와 삶을 전반적으로 고려하는 이주노동자 정책의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의 연구지원을 받아 진행한 ‘이주농업 여성노동자의 노동권, 주거권 및 건강권 확보를 위한 모색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직종 중 일부분이지만 20~30대 이주 여성노동자의 노동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우춘희 <깻잎 투쟁기> 저자가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첫째 농업의 노동환경 관련 여름철 농장의 폭염특보·온도·습도·겨울철 비닐하우스(동상 등) 작업환경을 고려한 휴식공간 및 충분한 휴식시간 보장과 작업장 근처 화장실 설치로 노동자의 ‘오줌권’이라는 존엄권 보장 필요하다. 둘째, 사업장 내 폭력·폭언·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해 경찰과 고용노동청에서 적극적인 조사가 있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요구에 따른 사업장 변경 등 제도 정비와 함께 임금체불 해소 방안(산재 가입 여부와 상관 없이 대지급금 적용 등)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이주노동자의 체류연장 권한은 사업주에게 있고, 이것이 이주노동자를 통제하는 막강한 기제로 작동하는 만큼 체류연장 주체의 변경이 필요하다.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의 체류비자 연장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체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종속되지 않고 법적 문제가 생기면 이를 제기할 수 있는 근로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셋째, 의료보험료에 상응하는 의료서비스 지원, 즉 의료서비스 접근권과 통역서비스 등을 제공해야 한다. 산업재해 인정 기준 개선도 필요하다. 10년 이상 농업 종사자의 경우 쪼그려 앉거나, 무릎, 허리에 무리가 가는 자세 등을 근골격계 질환 추정의원칙 적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넷째,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숙소와 높은 비용부담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는 법적으로 보장된 점유의 안정성과 주거 기반 시설 및 제반 서비스의 이용가능성, 주거비의 지불가능성, 거주적합성(최저 주거 수준의 확보), 접근가능성, 적절한 위치, 문화적 적절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다섯째, 이주 여성노동자의 연령대가 20~30대라는 점을 고려해 생애주기와 피임, 임신 혹은 임신중절, 출산 및 양육과 관련한 제도 설계 필요하다. 이주노동자의 임신은 노동력 상실로 보고, 해고하거나 비자 연장이 안 되거나 출국조치를 당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출생 시에도 한국 국적을 갖지 못하고 아이를 낳아도 영유아 관련 사회복지체계로 편입되지 않는다. E-9 비자는 가족 동반 체류자격이 허용되지 않는다.

앞으로 이주노동자의 도입 규모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재계의 요구에 따라 업종을 늘리거나 인력 규모를 확대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인권 보호와 권리보장까지 고려한 면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고용허가제의 굴레에서 유입은 늘리고 권리는 빼앗는 엇박자 행보를 지속하지 말고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주거권, 건강권 등 생애주기와 삶을 바탕으로 한국이라는 이국 땅에서 일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출 수 있는 정책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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