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산업에서 에너지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에너지 산업은 모든 산업생산의 기초가 되는 인프라 산업이며, 기반하고 있는 에너지 시스템이 무엇인가에 따라 경제의 성격도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1700년대 후반 1차 산업혁명 이후 세계 경제는 점차로 석탄·석유·가스라고 하는 고밀도 에너지를 갖는 화석연료에 기반해 산업을 발전시켜 왔는데, 이 측면에서 보면 지난 200여년 동안의 경제는 대체로 화석경제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화석경제는 도대체 어떤 경로로 그 이전의 경제에서 전환돼 올 수 있었을까. 이미 오래전부터 로마나 중국 등에서 알려진 석탄을, 왜 하필 영국에서 지난 200년 전부터 대규모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자본의 결정은 무엇이었고 노동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스웨덴 정치생태학자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이 2014년에 출간했던 <화석자본(Fossil Capital)>에서 꽤 설득력 있게 제시해 주고 있다.

사실 영국은 가정 난방 등을 위해 목재에서 석탄으로 열에너지원을 전환한 선구적인 국가다. 하지만 공장을 돌릴 운동에너지를 수력(수차)에서 석탄(증기기관)으로 옮긴 것은 한 참 뒤인 19세기 전반기라는 것이 말름의 문헌분석 결과다. 왜 이 시점에서 영국 기업들은 에너지 전환을 했던 것일까. 우선 말름은 목재나 수자원이 부족해져서 석탄으로 전환했다는 기존 주장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논박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력 자원은 여전히 풍부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수력비용보다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 비용이 더 저렴해져서 에너지 전환을 했다는 기존 주장 역시 근거가 없다고 말름은 덧붙인다. 당시에 여전히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수력에너지가, 비용을 꽤 지불해야 했던 석탄 기반 증기기관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석탄 기반 증기기관으로 영국산업이 에너지 전환을 했던 이유는 수력에너지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석탄에너지가 더 저렴해졌기 때문도 아니고, 심지어 수력에너지 기술이 뒤떨어져서도 아니었다면 어떤 요인이 석탄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했을까.

영국기업들이 수력 기반 산업시스템에서 석탄(증기기관) 기반 산업으로 전환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자본-노동의 사회정치적 역학관계라는 것이 말름의 놀라운 지적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당시 석탄을 태워 동력을 만들어 내는 증기기관은 비용이 높았는데도 수력과 달리 장소의 제약이 없어 물이 많은 시골이 아니라 노동력이 풍부한 도시에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때문에 자본은 수력을 이용할 수는 없지만 노동력을 자유롭게 공급받을 수 있는 도시지역에 석탄 기반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삼는 제조공장을 지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기존에 지역에 산재하는 수력 기반 제조업체들에서 이미 노동자들이 단결해 자본에 대항하는 등 노동운동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해 자본은 해고를 해도 노동력을 곧바로 채울 수 있는 도시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신설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제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석탄으로의 빠른 전환이 일어난 19세기 전반기가 영국 노동운동이 매우 활발했던 시기에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년 전 영국에서 에너지 유량(flow)의 하나인 수력에서 밀도 높은 에너지 저량(stock)의 하나인 석탄으로의 역사적인 전환에는 이렇게 자본-노동의 역학관계가 가로놓여 있었다는 말름의 지적은 과거의 통념을 깨는 지적이다. 이제 21세기 전반기인 2050년까지 한국을 포함하는 전 세계는 200년 전과는 정반대의 에너지 전환, 즉 화석연료라고 하는 에너지 저량에 기반한 산업에서 태양과 풍력이라는 에너지 유량에 의존하는 산업으로 역사적인 전환을 기획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기후위기라는 요인 때문이다.

노동을 제압하려는 자본의 이윤 동기가 아니라,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사회적 동기로 추진되는 21세기의 에너지 전환은 과연 어떻게 다를까. 이번에는 다소 수동적으로 휩쓸려 갈 자본이 자신의 전환 리스크를 회피하고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에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가. 그리고 노동은 기후를 위해서, 그리고 노동 자신을 위해서 어떤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할까. 이는 미래 노동의 가장 중요한 숙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bkkim21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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