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일을 시작해야 했던 월요일(19일) 나는 <매일노동뉴스>를 펼쳐 들었다. “고공농성 조합원 쇠사슬 두른 동료 보고 울었다”는 제목에 기사를 읽게 됐다.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공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매일노동뉴스>에 노동자가 고공농성 투쟁을 한다는 기사는 이것 말고도 더 있었다. “화물연대본부 알콜지회 노동자 고용농성 돌입”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울산 한국알콜산업 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고공농성은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이 나라 노동자들이 아직까지도 고공농성 투쟁을 한다는 것에 꽂혀서 이렇게 뉴스 기사를 읽었다. 일제 강점기 1931년 평양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이 임금 삭감에 반대해서 을밀대 지붕 농성을 했던 것이 100년이 다 되가는데 여전히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고공농성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붕에서, 철탑에서, 공장굴뚝에서, 망루에서 장소는 달라도 이 나라 노동자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농성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웬 고공노동이냐고 당신은 노동자 투쟁에 의문을 품고 있을지 모르겠다. 일제 강점기같이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극심했던 때라면 몰라도 고공농성이라니 노동자투쟁으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이런 식의 투쟁을 하는 것이야말로 이 나라 노동운동의 투쟁방식이 아직도 후진적이라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노사법치주의 운운하면서 법적으로만 보자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법에서 고공농성을 파업 등과 같이 쟁의행위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고공농성하는 노동자, 노동운동을 비판할 수도 있겠는데, 아니다. 20여년을 법률가로서 노동자를 대리한 자로서 나는 감히 당신에게 아니라고 말해야겠다.

3. 한국옵티칼은 2022년 10월 화재로 공장이 전소한 뒤 11월 청산을 발표했다. 지난달 8일에는 구미시가 공장 철거를 승인했다. 이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여왔다. 지난달 12일 대구지법 김천지원이 한국옵티칼 청산인의 철거공사 방해금지 가처분을 인용하면서 법원 집행관이 경찰을 동원해 행정대집행에 나섰고, 노동자들은 공장 철거를 막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고공농성 중인 지회 수석부지회장은 “공장을 지켜야 노조도, 우리도 지킬 수 있다”며 공장 철거를 “막기 위해 올라갔다”고 말했고, “고용승계를 하라는 게 안 될 일을 떼쓰는 것도 아닌데, 이미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고민은 길지 않았다”고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국알콜산업에서 지난해 11월 지회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다투게 됐는데,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지회 관계자는 “화주인 한국알콜산업은 진상조사도 없이 조합원만을 가해자로 규정해 배차정지 처분을 내렸다”며 “사건 발생 이후 5차례 교섭했지만 실질적 업무 지시 권한을 지닌 한국알콜산업이 운송사의 핑계를 대고 배차정지를 해지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당사자 2명에게 똑같은 배차정지 처분을 할 것 △진상조사 및 교섭을 재개할 것을 회사에 요구했으나 한국알콜산업은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대화를 거부해서 지회는 “화주가 채용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는데도 우리와 직접적인 계약관계를 맺는 곳이 운송사라는 이유로 화주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어 농성에 돌입하게 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4. 법대로 하자면, 노동자에게는 없다. 한국옵티칼에서는 사용자가 법인을 청산해서 사업을 접는다는 것이니 노동자에게 법은 없다. 고용보장, 고용승계는 사업체를 청산하는 사용자를 상대로 한 노동자의 권리로 보장하고 있지 않다.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인 법인이 청산돼 소멸되면 노동자는 근로계약상 고용 등 권리를 주장할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아 법적으로는 더는 근로계약상 권리를 주장할 수가 없게 된다. 일본 닛토덴코그룹은 한국옵티칼 이외에 평택에 공장을 둔 한국니토옵티칼도 자회사로 두고 있고, 한국옵티칼에서 화재가 나서 물량을 한국니토옵티칼으로 가져갔다 해도 법적으로 보자면 한국니토옵티칼로 고용승계가 보장되지 않는다. 소송을 제기해도 이 나라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자신이 일하는 공장을 철거해도, 자신을 고용한 회사를 청산해도, 물량을 그룹의 다른 회사로 가져가더라도 이 세상에서 노동자는 법적으로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에 따르면, 고공농성 중인 수석부지회장은 “두 기업은 사원복과 명찰까지 같다”며 “(한국옵티칼에) 화재가 났다며 우리 물량이 평택으로 갔다면 우리도 가서 일하면 되는데 고용승계를 막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고, “물량은 갖고 가고 사람은 버리겠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나라 법원은 이런 노동자의 말을 결코 들어주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이 세상에서 법은 이런 노동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한국알콜산업에서 법적으로 보자면 마찬가지다. 화주인 한국알콜산업이 조합원의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는 한, 운송사가 사용자로 인정되는 한 법적으로는 한국알콜산업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묻기 어렵다. 자신이 사용자가 아니라고 사용자로서 권한이, 책임이 없다고 한국알콜산업이 주장하면서 책임을 회피해도 법원은 한국알콜산업을 상대로 한 노동자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는다. 한국알콜산업이 실질적으로 근로계약상 사용자이거나, 적어도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돼야 법원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5. 이렇게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고공농성 투쟁은 법적으로 규정된 것도 아니고, 그 투쟁의 요구도 법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로 보장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나라 노동자는 고공농성인 것이다. 법적으로 고용승계를 보장하고, 화주가 사용자 책임을 지도록 했다면 굳이 노동자들이 고공농성 투쟁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렇지 않으니, 달리 투쟁할 방법이 없고, 달리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가 없으니 이 나라 노동자는 높이 올라가서 버티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옵티칼 노동자에게는 분명히 “물량은 갖고 가고 사람은 버리겠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한국알콜산업이 실질적으로 채용에 대한 권한을 행사해서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으니 노동자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화주 한국알콜산업을 상대로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서, 이 세상에서 법은 “물량은 갖고 가고 사람은 버리겠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고, 아직까지 화주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다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세상이 하는 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노동자에게 고용보장도, 고용승계도 주지 않고 화주에게 사용자책임을 묻지 못한다. 그래서 ‘고용승계하라’고, 사용자로서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해서 투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투쟁의 방법조차도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니 올라가 버티지 않으면 진압돼 계속해서 주장할 수 없어 이 나라 노동자는 고공농성을 하는 것이다.

6. 윤석열 정부는 틈만 나면 노사법치주의를 말해왔다. 노사의 불법행위를 엄단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노동자,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것이었다. 노동자측 불법행위로 대표적이라고 보는 것이 바로 불법파업 등 노동자투쟁인데, 여기서 고공농성 투쟁도 당연히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노사법치주의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노동자의 고공농성 투쟁은 신속히 불법행위로 진압할 대상이 되고 만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자가 달리 투쟁할 방법이 없어서 고공농성하게 되는 것인데, 이 나라에서 법을 집행하는 권력은 노동자의 고공농성을 법치주의를 내세워 진압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렇게 고공농성 투쟁을 하지 않고서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협상할 수 있는 법적, 사회적 제도가 마련돼 있었더라면 이 나라 노동자는 일제 강점기부터 계속된 고공농성 투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가 고공농성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 나라가 아직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노동자의 요구를 협상할 제도가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고공농성 투쟁은 노동자 투쟁이 아니라 이 나라가 노동자를 위한 법이, 제도가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자의 고공농성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를 비난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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