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민석 자유기고가

이번에는 ‘이승만’이다. ‘박정희 신화’가 무너지자 보수우파쪽에서 이승만을 새로운 ‘신화’로 제시하려는 듯하다. 정당이 수행해야 할 정치적 선전을 영화 한두 편으로 행하려는 세태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때도 많지만, 문예활동이 지닌 영향력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자 보수우파가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로 맞불을 놨다. 관련한 많은 논의가 여론을 달구고 있지만 따로 살펴봐야 할 만큼 의미 있는 주장을 찾아보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어떠한 논거를 가져오든 결국에는 이승만 ‘개인’에 대한 찬양 혹은 부정으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승만 개인을 놓고 그를 찬양하면 보수우파로, 부정하면 진보좌파로 구분되는 세태에서 이승만의 공과에 대해 상세하게 논의할 공론장은 존재할 틈이 없다. 그러한 상세한 분석과 논의가 오늘날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는 더군다나 논하기 어렵다. 논쟁하는 양측 모두 오늘날 한국의 문제 원인을 이승만 개인으로 소급하다 보니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승만이 ‘국부’로 추앙받지 않는 것이 현재 한국에서 여러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가 ‘친일파’를 등용한 것이 그 원인일 수도 없다. 오늘날의 한국이란 이승만 이후의 수많은 선택이 쌓이고 누적돼 형성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서 벗어난 중도파나 좌파진영 일각에서는 역사논쟁을 오히려 ‘불필요한’ 잡음 정도로 여기는 경향도 나타난다. 예전부터 진보정당이 민주당의 자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세력도, 자금도, 조직도 없는 진보정당들이 먼저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세계관에 기초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관은 이러한 세계관의 구성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우리는 현재라는 시공간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감각 그대로 경험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이들이 현재를 동일하게 감각할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각자의 경험에 기초해 저마다의 특정한 시공간을 형성하고 그것의 연장으로서 현재라는 시공간을 감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특정한 시공간을 매개로 ‘현재들’이 누적돼 형성된 시대 혹은 역사라는 이름의 켜켜이 쌓인 무언가를 인식하기도 전에 직관적으로 느낀다. 정당이 개입하는 지점은 바로 이 ‘직관’적인 감각이다. 하나의 집단으로서, 공동체로서 정당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해 그들의 정치적 행위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역사관은 다양한 결을 지닌 시공간들을 하나의 결로 빗질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물론 전문적인 역사학 연구자들은 역사의 수단화 혹은 도구화가 지닌 정치적 위험성을 경계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선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하나의 정치세력이 현재를 해석하고 그에 기초해 대안을 제시하는 데 역사적 해석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전 칼럼에서 언급한 개별적인 의지와 집단적 의지 간의 ‘일치’라는 비약 혹은 도약도 바로 이러한 결의 일체화를 전제로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오늘날의 진보정치는 역사관을 제시할 생각도, 역사논쟁을 적극적으로 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과거 진보신당의 중앙당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당직자에게 당의 역사를 정리한 문헌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10여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당직자의 그 당혹스러워하던 얼굴이 선하다. 자기가 속한 정당의, 조직의 역사조차 정리하지 못하는 게 한국 진보세력의 현실이다. 반성적 회고를 전제로 하는 집단적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으니 이승만, 박정희 같은 특정 정치인을 ‘영웅화’해 숭배하는 방식으로 정체성을 의탁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찍이 칼 마르크스는 인민이 영웅을 필요로 하는 건 인민들이 그 “자신의 노력으로 위대해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며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알게 될 때, 그리고 그것을 실현해 스스로 위대해질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역사관에 기초해 역사를 해석할 것인가.

자유기고가 (fpdlakst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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