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명문대학을 나와 3년째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는 김모씨(31)는 최근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계속 악화되는 취업난을 보면서 '올해에는 꼭 취직하겠다'는 연초의 자신감이 점차 사라지고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몇년간 공인된 영어성적을 갖추고 회계관련 자격증도 땄지만 희망하는 몇군데 회사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취업 눈높이가 높은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동안 갖춘 조건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들어가야 체면이 설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김씨는 나이만 먹는 자신을 보면서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연령 제한에 걸려 응시조차 할 수 없게 된 곳이 많았다.

정부의 실업대책이란 것도 단지 취업훈련을 시켜주거나 이름도 모를 중소기업에 인턴사원으로 취직하는 것일 뿐 답답한 김씨의 취업문제는 처음부터 그의 몫이었다.

■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의 취업난을 가중시킨 가장 큰 책임은 무엇보다 구직자에게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외 환경은 급변하는데 구직자들은 여전히 '철밥통'이나 '빚 좋은 개살구' 같은 직장만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3D업종이 기피대상인 것은 물론이고 30대 재벌기업은 여전히 취업 0순위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진행된 구조조정으로 인해 30대 그룹과 공기업, 금융기업 등 소위 '괜찮은(decent)'은 일자리는 97년 152만6000개에서 작년 123만7000개로 28만9000개 감소했다. 연구원측은 구직자들의 '그럴듯한' 직장 선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만큼 취업의 눈높이 조절이 필수라고 진단했다.

특히 정년이 보장되는 각종 '고시'는 여전히 상한가를 누린다. 다원화되고 민간 역할이 커지는 사회에서 고시의 인기가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취업난을 탓하기 앞서 사회적으로 큰 불행이다.

정부의 실업대책 부재도 취업난을 키우고 있다. 관련 부서는 매년 달라진 것 없는 실업대책만 재탕 삼탕하는 경우가 흔하다. 노동부는 각종 자격훈련, 직장체험프로그램 등을 통해 취업을 위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실제 취업에 어느 정도 연결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직장체험프로그램의 경우 단순히 참여한 사람이 몇명인지가 우선일 뿐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궁극적 목표인 취업은 얼마나 됐는지 하는 것은 나중 문제다.

기업들이 기존의 채용관행을 고집하며 정부 방침에 선뜻 나서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예컨대 노동부는 올해 연수지원제를 시행하면서 청년 구직자들을 받아 인턴교육을 시킬 기업들을 찾았지만 참여한 대기업은 5~6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노동부는 연수지원제 도입에 앞서 30여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참여를 호소했지만 대부분은 기존의 채용관행 유지와 다른 업체 눈치보기식으로 거부하고 있다.

■ 취업난 대책은
정부가 청년 실업 극복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직장체험 프로그램을 보면 국내 인턴제의 왜곡현상을 살필 수 있다.

순수한 경력을 쌓기 위한 '연수지원'보다는 인턴 후 취업이 거의 보장되는 '인턴취업'에 보다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까지 직장체험프로그램 지망자 5590명 중 연수지원과 인턴취업에 신청한 경우는 각각 1507명과 4083명으로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구직자의 처지에서 경력을 쌓도록 올해 새로 도입된 '연수지원제'는 최종 목풊a. 3~6개월간 문서작성 등 '허드렛일'을 한 것을 과연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월 30만원에 불과한 낮은 보수가 진정한 인턴제의 활성화를 막고 있다.

노동부는 연수지원제야말로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진정한 인턴제라는 주장이다. 짧은 기간이나마 직장체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탐색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것. 이로 인해 외국에서는 인턴 희망자가 오히려 돈을 내고 인턴과정을 밟기도 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인턴제의 올바른 운용을 통해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는 게 중요하다"면서 "현행 연수지원제를 취업을 위한 단순히 경력쌓기에 국한하지 말고 자신의 소질을 찾는 기회로 활용해달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