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올해 삼성 노사관계가 변곡점을 맞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 노조들이 협상력 강화를 위한 세 불리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4개 계열사 노조를 아우르는 삼성그룹 초기업 노조는 19일 공식 출범할 예정이고, 삼성전자 안 4개 복수노조도 통합 논의를 본격화했다. 각 계열사 임금협상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더 이상 노사협의회에서 임금인상률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노사교섭 무력화가 이어져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임금인상률이 다른 계열사에도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별도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삼성전자 사측 기본인상률 2.5% 제시, 노조는 8.1% 요구

1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최근 삼성전자노조 동행, 삼성전자사무직노조, 삼성전자구미지부노조와 통합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통합 추친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이달 안에 면담 일정을 잡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다. 전국삼성전자노조 조합원은 16일 기준 1만743명이고, 나머지 3개 노조 조합원 규모는 1천여명 정도로 통합시 전체 직원(12만명)의 15% 이상이 된다.

전국삼성전자노조(위원장 손우목)는 이달 말에서 다음달 초 임금협상 타결을 목표로 사측과 집중교섭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 교섭에서 사측이 임금 기본인상률 2.5%를 제시해 15~16일에도 교섭을 이어갔다. 앞서 노조는 4차 교섭 당시 차기 교섭에서 사측 제시안이 없을 경우 교섭 결렬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노조가 요구한 8.1% 인상률과는 격차가 큰 상황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손우목 위원장은 “사측이 기본인상률 외에 제시한 안이 없는데 다음주에도 추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교섭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쟁의권 확보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통상 3월에 임금 인상이 반영돼 왔기 때문에 그전에 협상을 타결하지 못할 경우 사측이 노사협의회에서 결정한 인상률을 일방 통보하는 ‘교섭 무력화’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삼성디스플레이·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 쟁의권 확보 수순

다른 계열사들의 경우 교섭에 속도가 나지 않아 노조가 쟁의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는 지난 15일 5차 교섭에서 결렬을 선언한 뒤 조만간 쟁의조정 신청을 할 예정이다. 노조가 요구한 25개 항목에 대해 사측이 14개는 ‘수용 불가’에 다른 항목도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밝히는 등 교섭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도 지난해 9월부터 10차례 넘게 진행한 협상에 진전이 없다며 지난 16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삼성전자 임금인상률을 다른 계열사에 가이드라인으로 적용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 15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낸 삼성전자와 달리 삼성디스플레이는 5조5천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만큼 삼성전자 기준을 따를 수 없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열린노조는 기본인상률 5%, 상생노조는 12%(2023년·2024년 임협 병합)를 요구했다.

열린노조와 상생노조는 삼성그룹 초기업 노조에도 참여한다. 삼성전자DX노조와 삼성화재 리본노조까지 4개 계열사 노조가 모인 삼성그룹 초기업 노조는 19일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1만3천여명 규모로 향후 삼성그룹 노사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22일 설립한 삼성전기 존중노조(위원장 신훈식)도 가입 의사를 밝혔다. 2천100여명이 가입한 상태다. 신훈식 위원장은 “3차례 교섭 요구 공문을 보냈지만 사측에서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며 “OPI(초과이익성과급) 책정시 EVA(경제적 부가가치)가 아닌 영업이익으로 기준을 바꾸고, 전환배치 등 일방적 인사조치 중단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부문별 교섭단위 분리 쟁점될 듯

삼성물산에서는 건설부문과 비건설부문 교섭단위 분리 문제가 노사관계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삼성물산에는 금속노조 삼성지회와 지난해 5월 설립된 삼성물산건설부문노조가 있다. 삼성물산건설부문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되면서 삼성지회는 조만간 3개 부문(상사·패션·리조트)에 대한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할 계획이다. 삼성물산건설부문노조도 교섭단위 분리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노위 판단에 따라 노노갈등 문제가 불거질 우려가 있다.

한편 2020년 5월 무노조 경영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의혹에 대해 공개 사과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노조파괴와 관련한 삼성전자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재판장 장현석)는 16일 금속노조가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 삼성물산, 한국경영자총협회,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등 40여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원고에게 1억3천만여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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