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연 하이징크스 대표

음악청취 방식 중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스트리밍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시대다. 최근 몇 년 사이 바이닐(레코드판) 판매가 유의미하게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절대다수는 음악 플랫폼 혹은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더욱이 요즘은 CD를 구매하더라도 이를 재생할 장치가 집에 없는 사람이 태반이다. 카세트테이프는 언급할 것도 없다. 과거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더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음악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고, 레이블에 소속되지 않아도 개인 자격으로 손쉽게 음원을 온라인에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겨났다. 이런 현실 속에 글로벌 기준으로 하루에만 12만 곡 이상의 신곡이 쏟아져 나온다.

글쓴이가 과거 운영하던 음악 웹매거진에서 서포터즈로 활동하던 친구 한 명은 2개의 음악 플랫폼 서비스에 올라오는 신곡을 하나도 빠짐없이 듣는 것이 하루의 루틴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는데 요즘도 그러는지는 알 수 없다. 그사이 증가한 수치가 과연 물리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양일지. 이 정도면 정보 과잉의 시대와 더불어 음악 과잉의 시대라고도 불러야 할 듯싶다.

음악 역시 휘발성 강한 소비가 돼버린 요즘 음악을 감상의 영역으로 되돌리기 위한 음악업계의 고민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미리 듣기(Pre-listening) 행사다. 한날한시에 전 세계에서 발매되는 새로운 앨범을 오프라인에서 며칠 더 일찍 들어볼 수 있는 기회다. 주로 음악가가 소속된 매니지먼트에서 준비하는데 새 음반의 마케팅으로서 충성도 높은 팬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려는 목적으로 기획한다.

글쓴이는 지난해 가을 영국 음악가인 ‘킹 크룰(King Krule)’과 올해 1월 ‘더 스마일(The Smile)’의 한국 미리 듣기 행사를 기획했다. 둘 다 평소에 좋아하던 음악가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미리 듣기는 그 누구보다 먼저 신곡을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보통 발매일보다 2~4일 정도 앞선 날짜에 진행한다. 음악을 듣는 것 외에도 특별 한정 상품(goods·음악가 관련 물품으로 음반 외에 티셔츠, 스티커 같은 다양한 제작 상품)을 선물하거나 판매하기도 해 여러 자잘한 유인 요소들이 있다.

킹 크룰 미리 듣기에 참석한 수십 명의 음악 감상자를 보는 일은 새삼스러운 감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영상과 함께 나오는 음악을 숨죽여 청취하고 열의마저 느껴지는 밀도 높은 공기는 ‘스트리밍 시대’ 진귀한 광경으로 여겨졌다. 더 스마일의 미리 듣기 행사는 조금 더 재밌었는데 다름 아닌 장소가 영화관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들의 인기를 고려해(더 스마일 멤버 중 둘은 슈퍼스타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 멤버다.) 상영 좌석이 많은 영화관을 제안했지만 톰 요크의 고집으로 미리 듣기는 오직 독립영화관에서만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홍대에 위치한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2개 상영관을 빌려 새 앨범 전체와 함께 새 앨범의 뮤직비디오, 넷플릭스 영화 <아니마>, 라디오헤드의 뮤직비디오 등을 구성해 1시간 30분가량 진행했다. 상영 티켓은 오픈한 지 1분 만에 동났고, 다른 영화관에서 추가 진행에 대해 문의가 오기도 했다.

예상대로 행사는 근사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영화관 대형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새 앨범의 영상과 여러 개의 스피커에서 뿜어나오는 고품질의 음향은 감상에 몰입감을 더했다. 라디오헤드를 비롯해 더스마일의 전 음반과 오직 미리 듣기 행사만을 위해 만든 카세트테이프와 스티커팩, 매거진 등 다양한 상품을 준비해 미리 듣기 행사의 독점적인 성격을 높였다.

어디서나 온라인에서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노래를 들을 수 있지만, 굳이 오프라인에서 한 장소, 정해진 시간에 모여 음악을 듣는 사람들. 손쉬운 시대에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자리다. 모든 것이 빠르고 손쉽게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리 듣기 행사에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이징크스 대표 (doyeon.lim@highjink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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