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가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중대재해전문가넷 창립 2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진행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과 관련해 지나친 ‘공포감 조성’보다 실질적인 예방 대책 마련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았다. 안전보건 전문성 강화를 위해 산업안전보건청 설치가 시급하고,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위험성 평가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빵집·식당 처벌? “과도한 공포 분위기 조성”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는 15일 서울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50인(억)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를 주제로 중대재해전문가넷 창립 2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었다.

동네 빵집이나 식당 등 83만곳 소상공인들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정부·재계의 우려는 왜곡됐다는 지적이 먼저 나왔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구속된 대표이사는 단 1명뿐”이라며 “범죄자가 양산돼 감옥에 가고 기업이 줄폐업하고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것처럼 호들갑을 떤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50명 미만 사업장에 전담 ‘안전관리자’ 마련 의무가 없다는 부분도 강조했다. 재계는 안전보건조직이나 안전관리자 도입으로 인건비 부담이 가중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권 변호사는 “이미 사업장 규모를 고려해 의무 수준을 완화한 것”이라며 “대신 사장이 안전교육을 받아 안전관리를 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실제 50명 미만 사업장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는 제한적이다. 관계 법령에 따르면 50명 미만 사업장은 △안전보건 총괄·관리 전담조직 설치 △안전보건관리책임자 평가기준 마련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안전보건관리 담당자·산업보건의 배치 의무가 없다. 권 변호사는 “직원이나 사장 중에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하면 본래 업무와 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역시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경영책임자가 기본적인 안전보건 확보의무만 이행한다면 처벌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덧붙였다.

“산업안전 일원화 필요, 위험성 평가 대책 필요”

적용유예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거래 대상’이 됐던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분산된 산업안전보건 행정을 일원화하고 전문성 축적과 검찰·고용노동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한계가 명확해 노동부 소속 기관이었다가 1989년 폐지된 ‘노동과학연구소’의 재설치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기존 안전보건 정책의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미진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노동부가 내세운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제’는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며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할 때는 유해요인에 대한 파악과 개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추진 중인 ‘산업안전 대진단’은 정부 의존성을 높이고 예산 소진을 위한 형식적 운영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소규모 사업장에 ‘실질적인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구축돼야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봤다. 변수지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약속)는 “소규모 사업장은 안전관리 능력이 현실적으로 요원한 사업장이 대부분”이라며 “실질적인 산업안전보건법상 감독과 처벌로 사업주의 안전에 대한 기초적 인식부터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용현 반월시화공단노조 월담 사무국장은 “위험성평가 과정에서 노동자의 실질적인 참여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소규모 하청기업과 원·하청 구조가 없는 단독 사업장, 특수고용·플랫폼노동 형태의 사업장에 대한 예방대책이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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