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올해도 공공부문 노정관계에 적잖은 갈등이 예상된다. 대화의 첫걸음도 떼지 못한 채 충돌할 조짐이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노정교섭을 거부하는 정부를 국제노동기구(ILO)에 추가 제소했다. 예산지침 등 가이드라인과 경영평가를 통해 공공기관 노동조건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고 있다며 지침을 무효로 해 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ILO “노조와 대화하라”, 정부는 외면
양대 노총 공대위 “ILO 협약 위반, 추가 제소”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원회는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를 ILO 98호 협약(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 위반으로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에 추가 제소했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2022년 7월 ILO 제소를 처음 시작했다. 정부가 지침을 통해 공공기관 노사 단체교섭에 부당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편성을 무기로 정부가 공공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은 부인 못 하는 사실이다. 공공기관 노동자의 임금 등 노동조건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공공기관 노사가 이를 벗어나는 임·단협을 체결하면 경영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주는 식으로 개입한다. 공공기관 노사는 성과급 삭감이라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정부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

ILO는 노정교섭을 제도화하라며 노조 손을 들어줬다. 결사의자유위원회는 지난해 6월 총회에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표된 지침이 공공기관의 단체교섭에 실질적으로 개입하지 않도록, 지침 수립 과정에 공공기관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완전하고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는 정기적인 협의 메커니즘을 수립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공대위는 이를 근거로 같은해 8월 노정교섭을 요구했다. 공대위가 네 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정부는 아직 묵묵부답이다. 대신 일방통행을 이어 갔다. 기획재정부는 같은해 12월 공공기관 노동자의 임금을 결정하는 예산운용지침과 경영평가 편람을 공공기관운영위를 통해 결정했다. 이에 공대위는 정부가 또다시 ILO 권고를 정면 위반하고 있다며 추가 제소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최근 ILO 권고를 의식한 듯 공공기관 관련 지침 운용에 대한 의견을 듣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5일까지 알리오(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홈페이지에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의 보완 필요사항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내용의 공지를 올려놨다. 2018년 제정돼 시행하고 있는 이 지침은 복리후생, 휴가와 휴직 제도 운용을 지양하고 공무원 수준을 기준 삼으라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공대위는 ILO 권고를 이행하는 척 '코스프레'하는 것이라 규정하고, 최근 “지침의 실질적 개정 협의에 나서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지침·경영평가로 공공기관 지배, 실상 밝힐 것”

노사가 임금과 복리후생 등을 놓고 실제 교섭을 벌일 수 있도록 기재부 지침을 무력화하기 위한 소송도 준비되고 있다.

한국노총 공공부문노조협의회(공공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는 조만간 기재부의 '2024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의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한다. 앞서 이들은 2021년 12월 공공기관 사내대출을 금지한 기재부의 경영평가편람 수정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에서 패소한 바 있다. 대법원 상고를 하지 않으면서 최종 패소했다. 이번에는 예산운용지침이 공공기관 단체교섭을 형해화하고 있다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낸다. 김재범 금융노조 사무총장은 “정부가 예산지침으로 세세한 복리후생까지 좌지우지함으로써 단체교섭을 침해하는 과잉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라며 “지침과 경영평가를 통해 공공기관을 지배하는 구조를 법원 판결을 통해 밝혀 보려 한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외치고, 정부는 귀를 닫으면서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올해도 갈등 일변도일 것으로 점쳐진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교섭을 해태하거나 거부하면 파업할 수밖에 없다”며 “오는 여름과 가을 정부는 양대 노총 5개 산별노조의 공동파업을 맞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고 촉구하는 것을 넘어서 퇴진 투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제정남·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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