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운 공인노무사(퀴어동네 부대표)

주변에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 동료가 있었다. 그는 꾸준히 치료받고 운동하면서 나보다 훨씬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또한 직장에서 노동을 하고, 일상생활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본인의 HIV 감염 사실이 혹여나 드러날까 봐 위생과 프라이버시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같이 음식을 먹을 때 타인과 식기를 공유하지 않고자 강박적으로 노력하고, 회사에서 매년 건강검진을 받을 때 HIV 검사가 포함돼 있는지 항상 체크했다. 감염인의 강박적인 노력(혹은 일상의 불편)은 HIV 그 자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HIV에 대한 무지와 혐오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HIV 감염인이 꾸준히 치료받는다면 바이러스는 미검출되고(Undectable), 이 상태에서는 콘돔 없이 성관계하더라도 HIV가 전파될 확률은 없다(Untransmittable). 이러한 ‘U=U’는 다수 연구의 결과로서 차별과 혐오로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다. 조기 검진을 하여 발견하고, 약물복용을 꾸준히 한다면 HIV는 더 이상 삶을 영위하는 데 문제를 초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HIV에 대한 무지와 혐오가 여전히 공고하다. 제7차 세계가치관조사(2017~2021)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한국인 중 92.9%가 “나는 HIV감염인과 이웃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우리 사회가 HIV 감염인을 동료시민으로 대하는데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는 뜻이다.

또한 한국은 HIV 감염인의 콘돔 없는 성관계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전파매개행위죄’(에이즈예방법 19조, 25조2호)가 여전히 살아있는 이상한 나라다. 미검출 상태인지, 성관계로 HIV가 실제 전파되었는지, 사전에 합의했는지 등은 따지지 않고 처벌할 수 있어 많은 감염인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심각한 인권침해 조항이다. 게다가 감염인이 조기검진을 회피하도록 만들어 공중보건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전파매개행위죄’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오랫동안 있었고, 위헌제청도 있었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4(합헌)대 5(일부 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 헌재 선고문에서도, 심지어 합헌 의견조차 U=U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HIV 감염인에 대한 무지와 혐오, 차별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고, 더 나아가 그것을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지와 혐오는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하고, 감염인 스스로조차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기검열’하게 만든다. 한국 HIV 낙인지표조사 공동기획단의 보고서(2016~2017)에 따르면, 감염인 당사자들은 수치심과 “나를 탓하기”, 죄책감 등에 시달린다. 응답자 10명 중 4명은 가족, 친구, 모임 등의 사회적 관계를 포기했다. 혐오가 만든 감염인의 내재적 낙인은 단순한 고립감을 넘어서 인간 삶의 필수인 ‘사회와의 관계맺기’를 어렵게 만든다.

일터는 ‘사회와의 관계맺기’를 가장 일상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HIV 감염인들은 일터에서 어떻게 노동하고 있을까. 많은 감염인들은 감염 이후 기존의 직업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새 직업을 선택할 때 관계의 밀도가 낮은 업종과 회사를 선호하게 된다. 채용절차에서 제공하는 군 신체검사 등급정보, 채용신체검사는 물론이고, 채용 이후에도 건강검진, 회사 동료나 상사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본인의 감염사실이 어떤 방식으로든 유출될까 봐 두려움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질병관리청은 “에이즈는 식사, 운동, 목욕 등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감염 불가능하므로 직장 업무, 회식,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로는 절대 감염될 수 없다”고 알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HIV 감염 자체가 노동자의 직무수행능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채용과정에서의 HIV 검사 실시금지를 강력하게 권고한다. 직무와 무관하고, 아웃팅(강제로 공개) 우려가 있는 건강정보를 불필요하게 요구하는 관행에 대해 사용자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건강검진에 HIV 감염정보가 포함돼 있더라도, 이것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유출하면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사회의 차별과 혐오는 감염인에게 그 정보를 다루는 사람과 시스템을 불신하게 만든다. 아무리 유출자를 처벌해도, 감염인이 그 회사를 신뢰하며 다닐 수 있을까? 강경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내 감염 사실이 드러나도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어야 감염인이 안전한 환경에서 노동할 수 있다.

이렇게 회사에서 직간접적으로 본인의 감염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감염인은 노동시장에서 구직의 문턱 자체가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위의 낙인지표조사에서 감염인 응답자 중 40.2%가 100만원 이하(2016년 당시 최저생계비 이하)의 저소득 군에 해당했다. 실업과 불안정 노동을 반복하다 가난과 사회적 고립에 고통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노동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데, 감염인에 대한 혐오는 이들이 안정적으로 노동하지 못하게 만들어 감염인의 삶을 흔든다. HIV 감염인의 삶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HIV 그 자체가 아니고, HIV 감염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혐오다.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 (qqdong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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