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윤석열 정부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지난 6일 첫 본회의를 열고 노동시간 단축을 포함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산업전환, 인구변화, 노동시간 및 임금체계 등 아직 구체적인 의제조차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정부의 ‘주당 69시간 개편안’이 남긴 파장 덕분에 당장 주목받는 사안은 단연 노동시간 개편안이다. 이에 발맞추어 한국경총은 지난 13일 ‘장시간 근로자 비중 현황 및 추이 국제비교’ 보고서를 발표하며 “장시간 근로 해소가 정책 목표가 될 시기는 지났다”, “규제 위주 근로시간 정책 패러다임을 유연성과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게 바꿔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총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실근로시간 기준으로 50시간 이상 임금노동자 비중은 12%, 소정근로시간 기준 10.3%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각각 1.8%포인트, 0.1%포인트 높다. 60시간 이상 임금노동자 비중은 실근로시간·소정근로시간 기준 각 3.2%·2.7%로 OECD 평균보다 각 0.6%포인트, 1.1%포인트 낮다. 노동자의 절반(47.9%)이 주당 50시간 이상 일하던 2002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지난 20년간 한국의 노동시간은 실제로 많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이번에 새롭게 발표된 것이 아니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발표된 내용을 장시간 노동자 비율을 중심으로 다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경총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이와 같은 내용을 발표하고 많은 언론이 이를 기반으로 기사를 쏟아내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도 같은 내용의 보도와 사설이 쏟아졌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나와는 먼 딴 세상 얘기인 듯”, “투잡까지 뛰면서 살아가는 세대들 불쌍하지 않나” 등의 댓글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통계와 현실의 괴리는 왜 나타나는 것일까?

일단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노동이 있을 것이다. 파트타임 노동으로 투잡·쓰리잡을 살아내는 노동자들, 풀타임 근무를 마치고 대리운전 등의 플랫폼노동으로 삶을 유지하는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실태 파악과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5명 미만 사업장을 비롯해 산업 전반에 만연한 ‘공짜노동’ 역시 이런 괴리의 원인일 것이다. 또한 ‘감소율’에 초점을 둔 보고서가 주는 착시효과도 한몫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큰 폭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OECD 평균보다 연간 185시간(2022년) 많다. 이는 주당 3.5시간에 해당한다. 통계를 그대로 수용해도 한국의 노동시간은 크게 감소했으나 여전히 OECD 회원국가 중 4번째로 길다.

경사노위에서 노동시간 문제를 다루게 될 위원회의 이름은 ‘일·생활 균형위원회’라고 한다. 경총의 주장대로 유연성과 생산성을 정책목표로 삼는다면 일과 생활의 균형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20년간 단축된 노동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삶의 질과 관련된 한국의 통계치는 여전히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2022년 기준 적정 노동시간 보장은 31개국중 29위, 1일 24시간 대비 여가시간 비율은 33개국중 28위였다.

노동시간이 줄어드는데도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 핵심적인 원인이 우선 여전히 절대적인 노동시간이 길다는 점 그리고 경총이 주장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유연성’ 때문이다. 이미 유연화된 52시간 상한 체계에서 연장근로 산정단위를 월단위 연단위까지 유연화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인 기조라는 점이 가장 큰 우려점인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경총의 주장대로 산술적인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을 정책목표로 삼을 때는 지났다면, 이제는 주 단위 상한만 정해져 있어 하루 12시간 이상, 심지어 철야노동이 빈번한 일터의 현실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삶과 건강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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