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직업환경의학전문의)

겨울철 건설노동자 목숨을 위협하는 갈탄은, 단지 값이 싸다는 이유로 콘크리트 양생작업에 사용된다. 건설노조가 질식사고 위험이 높은 갈탄의 사용금지를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가난 속에는 언제나 위험이 웅크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가난했던 시절, 비가 내리고 추웠던 밤이 지나면 동네마다 영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 이야기가 떠돌았다. 수탈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숲에서는 장작을 구하기 힘들었고, 도시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아무것도 없었다. 고단하고 가난한 농민, 도시 서민들에게 한 장이면 한나절을 데워주던 연탄은 사신의 축복과도 같았다. 값싸고 오래가는 연탄 사용이 절정에 이르던 1970~80년대, 부실하게 지어진 거주공간에서 매년 수백 명(기록에 따라서는 수천 명)이 중독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탄가스 중독을 일으키는 일산화탄소는 대표적인 화학적 질식제다. 아르곤, 수소, 질소, 헬륨, 메탄 등 그 자체는 유해성이 없지만 밀폐되거나 제한된 공간에 누출돼 호흡할 수 있는 산소의 농도를 떨어뜨리는 것을 단순 질식제라고 한다. 화학적 질식제는 혈액의 산소 운반능력이나 세포호흡 단계에서 에너지 생산대사를 저해하는 물질을 말한다. 일산화탄소는 혈액 속에서 산소 운반을 담당하는 헤모글로빈과의 결합력이 산소에 비해서 250배 높고 헤모글로빈이 조직에 도달해 산소를 떼어 전달하는 과정도 어렵게 만들어 신체의 모든 조직에서 산소가 부족하게 만든다. 더구나 세포호흡 단계에서 산화효소의 작용도 억제한다. 가히 살인가스라고 할 만하다.

가정에서 부실공사의 틈새로 새어 나온 무색무취의 가공할 살인가스에 중독되는 일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연탄 대신 기름이나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문제는 바로 그 집을 짓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중독과 질식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추운 겨울 콘크리트 양생을 위해 쓰이는 열원으로 연탄보다도 질이 낮은 갈탄과 숯탄, 야자탄 난로를 쓰던 건설현장에서 매년 질식사망 사고가 전해진다. 가난한 가정의 아궁이에 웅크리고 있다가 부실의 틈새로 흘러나오던 위험이 일터에서는 권리와 권력이 부재한 공간으로 들이쳐 노동자들을 질식시킨다.

사방을 둘러친 보온막 안에 자욱하게 갈탄을 피워 놓은 건설현장에서 맨몸으로 갈탄을 채워 넣으라는 지시에 대해 거부할 권리가 있어도 행사할 권력이 없다. 소규모 건설현장에는 갈탄의 열기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살인가스가 뭔지, 작업중지권이 뭔지도 모르는 노동자들이 위험에 처한다. 스스로 권리를 지킬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면, 소규모 건설현장 일용직에 위험을 알릴 방안이 없다면 금지하라! 건설현장에서 모든 저급탄을 사용한 난로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 위험을 관리하는 가장 근원적인 방법은 제거·대체다. 가정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감소가 이를 증명한다.

일산화탄소 중독은 잘 알려진 위험이다. 유해요인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노출의 결과는 무엇인지 관리의 방법은 무엇인지 잘 알려져 있다. 알려진 위험에 대한 관리 책임은 건설사에 있다. 문제는 유효한 관리 방법을 택하지 않고 노동자가 죽어가도 위험은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야장천 떠드는 자기규율은 발주사의 아량과 건설업체의 선의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면 반드시 훨씬 더 큰 비용과 처벌을 받는 것이 기업의 암묵지로 만드는 행정당국의 권위와 역량이 전제돼야 한다. 자기규율도 도모하지 못하고, 금지하지도 않는다면 애꿎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멈출 수 없다.

일부 관급공사처럼 동절기 타설 중단도 의미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안전보다는 공사의 품질로 바라보는 것은 문제다. 기후위기, 기후계 균형의 파괴는 예기치 못한 시기에 갑작스러운 한파를 불러올 수 있다. 만일 11월에 예기치 못한 한파가 몰려온다면 타설된 콘크리트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많은 나라에서 환경과 안전을 위해서 갈탄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갈탄 사용금지는 기후위기에도,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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